정부가 용산사고를 계기로 재개발사업 개선안을 내놓았다. 개선안 내용은 크게 봐서 세입자 지원,분쟁조정기구 설치,투명성 강화,건물주 책임 강화 등 네 가지다. 그간 제대로 된 기준도 없었던 재개발에 제도적 '기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일단 진일보했다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세입자가 재개발사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길이 열린 점이 주목된다. 이해당사자들이 대화로 입장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까닭이다. 아울러 세입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공공성을 강화키로 한 것도 재개발 때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갈등(葛藤)의 소지를 줄이는데 도움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제 발표한 내용만으로는 재개발사업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입자 지원을 강화했다지만 사실상 권리금을 변상해주는 것과 같은 휴업보상금을 3개월치 평균소득에서 4개월치로 늘리는 것만 해도 자칫 미봉책이 될 수 있다.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은 상가를 세입자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대목 역시 실효성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권리금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도 분쟁의 불씨를 그대로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물론 권리금은 법적 근거도 없고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관행이지만 재개발 때마다 불거지는 현실적인 문제다. 따라서 기존방침에 변함이 없더라도 분명한 원칙을 거듭 강조해두는 것이 다음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크나큰 불상사가 빚어졌지만 도시가 발전하고 경제도 성장하기 위해서 도심 등지의 재개발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곳곳의 소단위 개발사업에다 대규모 뉴타운사업에 이르기까지 성격도 다양하다. 그런데도 용산사고 이후 재개발사업 자체가 전면 중단됐다니 딱한 노릇이다.

이제부터라도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재개발은 어떤 경우든 서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되 진행상황과 정도를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충분히 고지(告知)하고 대책을 강구해간다면 피해자는 최대한 줄어들 것이다. 또 사업범위가 넓고 자율적인 이해조정이 어려운 곳은 공영개발도 굳이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