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로 산업계 전반에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던 1999년 여름.쌍용건설에서 주택사업 부문 업무를 맡고 있던 이 부장(48 · 당시 과장)은 매일 집으로 배달되던 우유를 끊었다. 보험과 적금도 해약하고 초등학생인 아들의 학원도 그만두게 했다. 쌍용건설은 1998년 그룹의 쌍용자동차 매각으로 부채 약 1600억원을 인수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다 결국 이듬해 3월부터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약 2300명이던 임직원은 4분의 1 수준인 700여명으로 대폭 감원됐다. 남은 직원들에게도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랐다. 급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상여금을 모두 반납해 대부분 직원이 1년에 800만원대의 봉급으로 생활해야 했다. 이 부장은 "영세 급여생활자로 전락해 소득세도 면제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00년 말 기준으로 부실 건설사는 112곳에 달했다. 이 가운데 워크아웃 기업은 11개,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19개,화의 69개,부도 7개였다.

건설사들은 1997년 5월 당시 시공능력평가 24위였던 한신공영의 법정관리 신청을 시작으로 차례로 쓰러져 갔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렸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맡았던 당시 5위의 동아건설은 1998년 8월 '워크아웃 1호' 건설사가 됐다. 대우건설,현대건설,쌍용건설,벽산건설,경남기업 등도 그 뒤를 밟았다. 성원건설과 서광건설산업,대동종합건설 등은 화의에 들어갔다.

이들 기업에는 서슬 퍼런 구조조정의 칼날이 휘둘러졌다. 벽산건설은 1000여명에 달하던 직원을 470명으로 줄였으며 대우건설도 3500여명 가운데 930명을 내보냈다. 신규 사업도 대거 축소했다. 청구와 우방,보성 등 '대구 빅3' 건설사가 모두 몰락한 대구에서는 1998년 주택 공급량이 전년 대비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 같은 구조조정과 함께 2001년 들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확대하는 등 건설경기부양책을 쓰고 주택시장이 활황을 타면서 건설사들은 하나 둘씩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대우건설은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금호아시아나가 인수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시공능력평가 1위에 올랐다. 쌍용건설은 2004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나 현재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이 회사는 2007년 당시 단일 건축물로는 사상 최고 수주액인 6억8000만달러 규모의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복합 리조트' 사업을 수주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회생에 실패한 기업들도 많았다. 건설공제조합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부실 건설사 100여곳 가운데 삼익,보성 등 43개 기업이 결국 파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