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초급매 팔리고서 재건축 거래 없이 호가 강세
강북, 매수 없어 급매물도 안 팔려..고점 대비 10-30% 하락


#장면 1. 지난해 12월 초부터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A 아파트를 사려 했던 김모(49)씨는 지난주 중개업소에 전화해보고는 깜짝 놀랐다.

지난달 금리 인하 이후 급매물 호가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투기지역 해제, 제2롯데월드 건립 기대감으로 불과 10여 일 만에 호가가 1억 원 가까이 뛴 것이다.

김씨는 "저가 매물 몇 개가 팔리더니 집주인들이 순식간에 매물을 거둬들이고 호가를 올려버렸다"며 "이 금액에라도 추격매수를 해야 하는 건지,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봄까지 기다려봐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했다.

#장면 2.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B 아파트 109㎡를 사려는 박모(37)씨. 박씨는 지난주 중개업소를 들러 분위기만 살펴보고 계약은 하지 않고 돌아왔다.

매물은 많은데 매수자는 없어 결국 호가가 더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박씨는 "고점 대비 많이 떨어진 급매물이 나와 있지만, 막상 사려니 바닥은 아닌 것 같아 망설여진다"며 "좀 더 하락할 것 같아 기다려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서울 강남권 시장과 강북권 시장의 분위기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한 강남권은 지난해 말부터 저가 급매물이 팔리며 호가가 뛰었지만, 강북권은 지난해 가을 이후 거래가 살아나지 않으며 하락세가 짙어지고 있다.

강북권은 지난해 최고가 대비 10-30%까지 하락한 급매물이 등장했지만, 거래가 안 된다.

역시 최고가 대비 30-40%씩 빠졌던 강남권 초급매물이 소화되며 호가가 오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고려하면 강남의 반등 기미는 일시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며 "강남은 추가 조정폭이 크지 않더라도 강북은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 매수, 매도 썰렁한 강북 = 지난해 연초부터 뉴타운 개발 호재 등으로 집값이 크게 올랐던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등지에는 최근 고점 대비 10-30%씩 빠진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보람아파트 109㎡는 지난해 5월 4억8천만 원까지 올랐던 것이 현재 27% 하락한 3억5천만 원짜리 급매물도 팔리지 않는다.

상계동 주공6단지 79㎡도 지난해 8월 최고가였던 3억3천만 원 대비 24.2% 떨어진 2억5천짜리 매물이 있지만, 손님이 없다.

노원구 월계동 한진한화그랑빌 109㎡ 급매물은 지난해 9월 4억9천500만 원보다 33.3% 낮은 3억3천만 원에 나와 있다.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거래가 완전히 끊겼다"며 "지금 가격에서도 2천만-3천만 원은 더 낮춰져야 매수자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군 수요로 인기가 높은 노원구 중계동 건영 3차는 지난해 가을 매물이 없어 6억5천만 원까지 치솟았지만, 현재 27.7% 빠진 4억7천만 원 짜리 급매물이 나와 있다.

이 지역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실물 경기침체가 심화한다고 하니 집을 사려고 들지 않는다"며 "아직 강남권 재건축 시장의 온기가 이쪽까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강북구 미아동, 수유동 일대도 고점 대비 10-15% 정도 빠진 매물이 수두룩하다.

미아동 SK 북한산도시 142㎡는 지난해 7월 5억2천500만 원까지 팔렸지만, 현재 14% 떨어진 4억5천만 원에 매물이 있다.

스피드뱅크 김은경 리서치팀장은 "매수자들이 강북은 강남보다 가격이 덜 내렸다는 생각에 구매를 망설인다"며 "구조조정 등 앞으로 불어닥칠 회오리바람에 대한 걱정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 호가 들썩이는 강남 = 이에 비해 강남권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초급매물이 팔리면서 호가가 뛰고 있다.

정부의 금리 인하 정책과 투기지역 해제에 대한 기대감, 가격이 빠질 만큼 빠졌다는 바닥 심리, 제2 롯데월드 허용 등이 복합적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는 지난해 말부터 초급매물이 팔리면서 호가가 1억 원 정도 상승하고 나서 지난주 제2롯데월드 허용 소식이 전해지고서는 호가가 1천만-2천만 원가량 추가 상승했다.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도 강세다.

56㎡는 작년 말 9억8천만 원에서 10억5천만 원으로, 43㎡는 연초 6억3천만 원에서 6억6천만-6억7천만 원으로 각각 상승했다.

대치동 일대 청실, 우성 아파트 등도 이달 들어 2천만-3천만 원씩 호가가 뛰었다.

하지만, 오른 가격에 대한 부담감으로 매수자들이 관망하면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매도-매수 호가 격차도 크게 벌어진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초저가 매물이 팔리고 나니 집주인들이 그다음 높은 가격도 호가를 더 올려버린다"며 "반면 매수자들은 시세보다 5천만 원 이상 싸야 산다는 입장이어서 거래는 활발하지 않다"고 말했다.

재건축 외에 일반 아파트는 아직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특히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같은 고가나 중대형 아파트는 여전히 급매물도 소화되지 않고 있다.

◇ 강남 '대세 상승은 글쎄', 강북 '추가 하락할 듯' = 강남 집값에 대해 현지 중개업소와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바닥을 쳤다'는 전망과 '시기상조'라는 전망이 맞서고 있다.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강남 집값은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정부가 투기지역마저 풀어준다면 완전히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현재 상승 기조가 일시적일 뿐 대세 상승은 아니라는 반응이 많다.

우리은행 강남 PB센터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쌍용자동차를 시작으로 건설, 조선 등 국내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코앞에 닥쳐 있다"며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집값이 오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현재 강남권이 들썩이는 것은 기술적 반등 측면이 강하고, 여러 호재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며 "거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호가는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미국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 세계 경제 위기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국내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강남 집값이 앞으로 크게 하락하진 않더라도 지금 당장 오른 가격에 추격매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강남 집값이 계속 불안 조짐을 보일 경우 투기지역 해제가 늦춰지거나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강북지역은 당분간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강남권은 지난 2006년 말이 고점으로 지난해 말까지 2년간 조정기를 거친 반면 강북은 지난해 5-8월이 고점으로 조정기간이 4-7개월에 불과하고 아직 낙폭도 크지 않다.

스피드뱅크 김은경 팀장은 "강북에서도 특히 지난해 봄 집값이 급등했던 '노.도.강' 지역의 하락폭 10% 안팎의 단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강남이 바닥을 치고 올라와야 강북도 따라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