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원짜리 5채 가진 사람은 622만원
10억원짜리 1채 보유자는 686만원
누진세율 적용 때문에 발생…재산분할 부작용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들이 잇따라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이미 내렸고 국회는 종부세 과세대상과 세율인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다주택자에게 중과되는 양도세 역시 미분양 아파트 해결 방안의 일환으로 개편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재산세는 예외다. 부동산 세제개편 대상에서 아예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종부세를 재산세에 흡수시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굳건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다주택자가 유리

여러 채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한 채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세금 부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국세무사회에 의뢰해 알아봤다.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1억원짜리 주택 5채'와 '5억원짜리 주택 1채'를 보유한 경우와 △'2억원짜리 주택 5채'와 '10억원짜리 1채'를 보유한 경우를 각각 비교했다. 후자는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이다. 두 경우 모두 다주택자가 훨씬 적은 세금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1억원짜리 주택 5채를 보유한 사람은 재산세와 도시계획세 공동시설세 지방교육세를 포함해 한 채당 25만8500원씩 모두 129만2500원의 세금을 낸다. 반면 5억원짜리 한 채를 갖고 있는 사람은 175만500원을 내야 한다. 동일한 금액의 5주택 보유자보다 45만8000원이나 많은 세금을 1주택자가 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자는 어떨까. 2억원짜리 주택 5채를 보유한 사람은 622만444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반면 10억원짜리 1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686만3000원을 납부해야 한다. 1주택자가 내야 하는 세금이 63만8560원이나 더 많았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다주택자가 약간 더 내지만 재산세는 1주택자가 훨씬 많이 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이 같은 차이는 재산에 붙는 세금이 누진세율로 적용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현행 재산세는 과세표준 4000만원까지는 0.15%,4000만원~1억원은 0.3%,1억원 초과는 0.5%의 세율이 적용된다. 예컨대 공시가격 1억원짜리 주택(과세표준액 5500만원,과표적용률 55%)은 4000만원까지 0.15%,4000만~5500만원에 대해서는 0.3%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반면 5억원짜리 주택(과세표준액 2억7500만원,과표적용률 55%)은 4000만원까지 0.15%,4000만~1억원은 0.3%,1억~2억7500만원은 0.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1억원짜리 한 채의 재산세를 5배로 곱한 금액보다 5억원짜리 한 채의 재산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종부세는 다주택자가 많이 내는 것처럼 보인다. 2억원짜리 주택 5채를 가진 경우 종부세는 340만9440원,10억원짜리 주택 한 채를 가진 경우 종부세는 295만원이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재산세 과세 단계에서 1주택자가 훨씬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뿐이다.



◆물건에 누진과세 적용이 문제

누진세율은 소득세처럼 사람에게 부과되는 세금에 알맞은 형태다. 예컨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이자소득 등을 모두 합산한 금액에 누진세율을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고소득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사람은 쪼갤 수 없기 때문에 누진세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반면 부동산 등의 재산에 누진세율을 적용할 경우 인위적으로 재산을 분할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단독주택을 연립주택으로 재건축하는 경우 한 채로 등기하기 보다는 여러 채로 분할등기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지분을 쪼개면 쪼갤수록 세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부동산은 주택과 나대지,업무용 빌딩의 부속토지(별도합산 대상) 등이다.

부동산건설팅업체인 유엔알컨설팅의 박상언 대표는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세 중과 등의 불이익을 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행 재산세 체계는 이해하기 힘든 세율 체계"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PB사업부의 원종훈 세무사도 "주택 등의 재산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현금 유동성이 많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며 "헌법재판소가 최근 거주 목적의 1주택자에 대한 차별없는 종부세 과세가 사실상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선 단일세율이 일반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재산세에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에서는 과세표준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일정한 단일세율로 세금을 매기는 과세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영국이 각 지역 거주자의 주거용 부동산을 시가에 따라 A~H등급으로 나눠서 구간별로 각각 다른 정액세를 매기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지방정부가 재정 여건을 감안해 세액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박명호 한국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은 보유세를 그 지역 주민이 받는 치안 교육 등의 행정서비스에 대한 반대 급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의 가격에 상관없이 단일세율을 매기는 비례세 체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 따라 세율이 각기 다를 수는 있어도 한국처럼 누진세율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