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자산유동화연구회 에서 재인용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꽃이 아닌 것처럼 땅을 그냥 두면 그저 땅일 뿐. 잠자는 부동산을 꽃으로 만드는, 부동산금융시장이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만개하기 직전이다. 금융사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미개척분야로, 투자자는 만족할 만한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운용수단으로 새삼 부동산금융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끝간 데 모르고 값이 치솟는 부동산 버블과 이로 인한 경제불안 등 기형적 부동산 구조를 잡기 위한 근본 처방으로도 부동산금융시장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금리 낮음. 주식시장에는 외국인만 와글. 부동산은 널뛰기 중. 장기상품 없음. 투자자들은 ‘돈 굴릴 데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대출 열심히 했더니 부실우려. 수수료 하락.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사들은 ‘돈 벌 방법이 없다’고 울상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양쪽 모두가 눈을 크게 뜰 만한 대안으로 ‘부동산금융’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주택금융),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제공해 부동산을 개발하거나(개발금융), 펀드 형태로 부동산개발사업에 돈을 넣어 수익을 되가져가는(부동산 간접투자) 등 금융수단에 담금질한 부동산, 즉 유동화 부동산을 모두 통칭하는 ‘부동산금융’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 발견된 신대륙이나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은행법에는 ‘부동산 구매자금은 대출해서는 안된다’는 금지 규정이 있었다. 수요는 넘치는데 자금이 부족했던 시대, ‘자금은 생산하고 설비투자하는 데 써야지 부동산 따위에 사용할 것이 어디 있냐’는 취지를 담은 법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에서 공장에 대출을 해도 공장부지 매입비용만은 쏙 빼고 대출금을 내줘야 했던 시절이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돈을 빌려 집을 사려면 겨우 국책은행인 주택은행을 통해서나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205조원(2002년 말 기준)에 이른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은 올해 약 10조여원을 프로젝트파이낸싱에 투자한 것으로 추산된다. 부동산 간접투자도 대략 1조5,040억원으로 추산된다. 올 상반기 은행의 부동산신탁 잔액이 9,860억원이었고, CR리츠는 현재까지 5,180억원이 구성돼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금융시장이 형성된 계기로 IMF를 꼽고 있다.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기업 부실로 인한 은행대출 부실, 건설회사 부실로 인한 자본시장에서의 부동산개발 자금조달 필요성,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리츠의 도입” 등을 부동산금융시장 형성의 계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시장은 얼마나 더 커지게 될까. 전문가들은 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시장 성장에 기폭제가 될 변수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경부가 추진 중인 주택금융공사 설립이다. 부동산시장으로의 외국자본의 유입도 중대변수 중 하나다. 부동산금융 발달하면 외국돈 몰려온다 호주계 투자은행 맥쿼리는 지난 10월12~14일 서울에서 ‘아시아기관투자가포럼’을 열었다. 여기에는 각종 해외 및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초대됐는데 특히 유럽계 연기금이 많이 와서, 맥쿼리가 아시아 및 한국의 부동산투자 환경을 어떻게 보는지에 귀기울였다. 맥쿼리 프로퍼티의 한진수 이사는 “맥쿼리는 한국 부동산시장이 좋은 투자처로 충분히 성장할 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면서 “해외 기관들은 부동산을 직접매입하기보다는 리츠 같은 금융수단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하기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포럼에서 맥쿼리은행 부동산부문 아시아대표 데이비드 셰퍼는 “독일의 연기금펀드가 한국 부동산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한이사는 “자국에서만 투자할 수 있다는 규정에 묶여 있던 독일 연기금이, 그 규정이 풀림에 따라 지난 몇 달간 계속 한국시장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 왔으며, 내년께 가시화돼 나타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IMF 외환위기 와중에 헐값에 건물을 사들인 일부 외국자본 외에는 부동산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는 이제 시작단계에 있는 상태다. 따라서 외자의 부동산시장으로의 유입과 함께 부동산금융시장은 더 폭발하고, 또 부동산금융이 활성화되면 외자가 더 많이 들어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후분양제 역시 부동산금융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미리 분양하고 계약자들로부터 돈을 받아서 개발을 진행한다. 그러나 후분양제가 되면 일부 대형 건설업체를 제외하고는 개발자금을 자체 조달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본시장에서 돈을 끌어와야 한다. 향후 아파트 공급시장 규모를 추산하기가 어려워 금액은 추정할 수 없지만 개발비의 30%만 프로젝트파이낸싱과 같은 금융수단을 통해 조달된다고 해도 그 규모는 엄청난 것이 된다. 한편 정부가 최근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부동산 억제책과 종잡을 수 없는 내년 부동산가격이 부동산금융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부동산금융을 발전시켜 다양한 유동화 방법들이 제도화되면 부동산가격 안정화에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유동화를 촉진할 목적으로 생기는 주택금융공사의 장기주택제출(모기지론) 등이 오히려 주택수요자를 증가시켜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재정경제부의 주택금융공사 용역을 수행한 건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보고서에서 “주택금융 확대로 전ㆍ월세 수요가 축소돼 임대수익률이 하락, 투자 목적의 주택수요를 축소시킬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주택가격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본시장 전체 측면에서도 장기채인 주택저당채권(MBS) 공급이 늘어나면 현재 부동산으로 몰려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는 과다한 단기부동자금을 흡수할 수 있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긴 안목으로 볼 때 앞으로 부동산금융시장이 크게 발전될 것이며, 전체 자본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 측면에서도 대세라는 것만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김수연 기자 soo@kbizweek.com ------------------------------------------------------------------ [ 용어설명 ] 프로젝트파이낸싱 (project financing)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장기에 걸쳐 많은 사업자금이 소요되는 특정 사업에 대해 부동산담보나 지급보증 없이 사업의 미래 수익성이나 사업 주체의 신뢰도만 믿고 대출해주는 것을 말한다. 오랫동안 많은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한 사업에 대해 여러 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 실패하면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지는 위험부담이 따르는데, 현재 국내 금융사들은 별도의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리츠 (REITs) CR리츠(Corporate Restructuring REITs)는 다수의 투자자가 500억원 이상의 현금 또는 부동산을 출자해 설립하는 부동산투자회사다.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운영된다. 여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 페이퍼컴퍼니의 주식을 사서 주주가 되고, 수익은 배당 형태로 받는다. 일반 리츠는 모든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지만, CR리츠는 기업의 부채상환용 부동산에만 투자해야 하며 운영은 자산관리회사에 위탁해야 한다. 현재 국내 리츠시장에는 CR리츠밖에 나와 있지 않다. 일반 리츠는 세제 혜택이 적어 적정 수익률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