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 제도로 도입될 가능성 커 지난 10월13일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단연 화제가 됐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부동산 대책으로도 부족할 때는 강력한 토지공개념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강력한 토지공개념’의 내용과 범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짐작하기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준비 중인 부동산 대책이 부족할 경우’라는 단서가 있어 시행 여부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방침도 아직 정해지지 않아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예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10월14일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이 “(주택가수요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밝혀 ‘강력한 토지공개념’의 내용이 주택거래에 모아질 것임을 시사했다. 현행법 확대 적용 유력 주택거래에 공개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과 현행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 그것. 하지만 새로운 법을 제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법을 제정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돼 하루가 멀다 하고 뛰고 있는 현재의 강남 집값을 잡는 데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개발이익환수제, 토지거래허가제 등 현행법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유력하다. 89년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 개발이익환수제는 농경지, 산림용지 등의 지목을 변경해 택지지구, 산업단지, 골프장 등으로 개발할 때 발생하는 이익금의 25%를 환수하는 제도다. 그러나 현재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재개발ㆍ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용적률만 조정할 뿐 지목을 변경하지는 않기 때문에 적용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당초 올해까지만 적용되고 폐지될 예정이던 이 법을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재개발ㆍ재건축 아파트에까지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토지거래허가제의 범위를 주택에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유력하다. 이 제도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관할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 뉴타운 예정지, 행정수도 후보지 등 주로 대규모 개발예정지와 그 주변지역에 한해 시행되고 있지만 55평 이하의 주택지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토지지분이 3~10평 정도에 불과한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는 이 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정부의 방안은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등에도 이 법을 적용시키고 허가대상 주택면적을 대폭 줄여 허가지역 내의 거의 모든 주택거래를 허가제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토지공개념에 대한 정부의 복안이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이든 심각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반대여론이다. 사실 89년 12월30일 제정, 공포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등 토지공개념 3개 법은 급등하던 아파트매매가를 91년 -1.8%로 내려앉히는 등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음에도 모두 위헌시비에 휘말려 폐지되거나 조정됐다. 택지소유상한제는 국민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99년 위헌결정을 받았고, 토지초과이득세는 미실현 소득에 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유일하게 존속하고 있는 개발이익환수제도 98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후 정부는 2000년부터 이익환수비율을 50%에서 25%로 내려 부과하고 있다. 그나마 올해 말 폐지하기로 예정돼 있다. 위헌시비에 휘말리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택거래허가제를 시행하게 되면 거의 모든 주택거래에 허가를 내줘야 하는데 현재의 행정력으로는 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개발이익환수제를 재개발 아파트에 적용하면 수익률 악화에 따른 업계의 반발이 예상돼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택거래허가제 제한적 도입 검토 토지공개념 제도는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3단계의 ‘부동산시장 안정 종합대책’의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1단계는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낮추고 부동산대출 금리를 인상하는 등 금융정책을 통한 단기적인 수요억제책이다. 이미 지난 10월12일 국민은행이 부동산대출 금리를 인상한다고 밝혔고 조만간 다른 시중은행들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2단계는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이다. 현행 재산세와 보유세를 강화하고 종합부동산세를 조기 시행할 공산이 크다. 토지공개념 제도는 1, 2단계의 대책으로도 부동산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 도입될 것으로 점쳐진다. 우선은 금융과 세제를 통한 안정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대통령의 뜻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10월15일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조세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실거래가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이 가능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도 “약발이 너무 세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혀 지나치게 강력한 토지공개념 제도는 도입되지 않을 것이며 도입된다 하더라도 제한된 범위에서 한시적으로만 시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 분석 부동산대책의 심리전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국무총리,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 등 정부의 최고위층 인사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반드시 잡겠다고 연일 다짐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간부급 공무원들마저 “위헌 가능성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10월 말에 나올 예정인 부동산 대책의 강도가 얼마나 셀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경제관련 장관들의 표현에는 상당히 자극적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김진표 부총리는 “강남 집값에는 거품이 끼어 있는데 여기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거품을 부추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가 ‘거품’이라는 단어를 단정적으로 얘기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겠다는 경고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김부총리는 “집값이 급격히 하락해 자산시장 붕괴를 야기하더라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동원했다. ‘붕괴’라는 단어는 정책당국자가 쉽사리 써서는 안되는 용어다.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최장관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는 국민들을 상대로 부동산 투자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지만 수요자들이 이를 깨달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꾼들에 대한 공갈협박성 발언이지만, 집 한채 갖고 있는 서민들도 불안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도가 높은 발언이다. 정부는 재정이나 금융 등 정책수단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시장에 개입한다.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입’에 기관투자가들의 귀가 쏠리는 것은 당국자의 무게 있는 발언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그린스펀은 시장 참가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표현으로 시장에 접근한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경제장관들은 지나칠 정도로 단정적이고 과격하게 말하고 있다. 부동산가격이 정부의 강력한 투기 억제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승한다면 정부의 신뢰성은 무너질 수 있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도 매우 이색적이다.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의 간부급 공무원들은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생각나는 대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 이 가운데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가는 정책 아디디어들도 많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부동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전면 공개한다든가, 기존 대출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등의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얘기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여론의 반응을 떠보는 동시에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 이전부터 시장에 겁을 줘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심리전이다. 구두개입으로 기대한 효과를 거둔다면 다행이지만, 걱정되는 것은 정부 당국자들의 구두개입이 강할수록 대책이 나온 이후의 효과가 반감될 뿐만 아니라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시장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