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섭 < 주거환경연구원 연구위원 >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값 상승을 잡기 위해 80% 이상 공사한 뒤 분양하라는 후분양제를 내놨다. 정부의 다급한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주거환경 재정비에 수년간 관심을 가져온 입장에서 이번 대책이 장기적으로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투기차단과 아파트값 안정에 얼마나 기여할지 내심 걱정이 앞선다. 서울지역 주택시장 불안의 주요 원인중 하나는 최근 몇 년간 서울에서 공급되고 있는 주택유형별·지역별 수급 불균형 현상이다. 서울에선 지난 3년간 총주택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했다. 그러나 주택 유형별로 보면 다세대·다가구가 대체로 많이 공급됐다. 아파트는 공급이 많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한 조사업체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세대·다가구는 투자가치나 주거환경 측면에서 아파트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보면 강남권에 오래된 아파트의 50% 이상이 집중돼 있다. 강남권에선 신규 아파트 대체 수요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높다는 의미다. 결국 서울에선 주택이 모자란 게 아니라 양질의 신규 아파트가 부족한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책이 아파트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억제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신규 아파트의 주요 공급원인 재건축을 지연 또는 억제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펴고 있다.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세무조사 등의 영향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안요소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후분양제가 재건축시장의 양극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후분양제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면 재건축사업은 조합이 얼마나 자금조달을 잘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시공사는 더이상 사업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미분양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업장에만 참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강북 또는 수도권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은 수익성이 떨어져 재건축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