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인 이태희씨(51)는 지난 1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농가주택을 매입한 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계획했다가 그만뒀다. 대지 5백평에 건평 60평인 이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하면 근처에 건립된 전원주택 못지않은 그림 같은 집으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마음을 접었다. 농가주택에 얹혀있는 상량(上樑)이 그의 계획을 돌려놨다. 상량에는 일본연호인 '昭和(쇼와)12년2월'이라고 적혀 있었다. 1937년 2월에 준공된 집이란 의미다. 지은 지 66년이 넘은 집이지만 서까래며 기둥 보 마루 등 기본구조는 단단했다. "이런 집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면 뭔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이씨는 털어놨다. 이씨는 대신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집을 수리하기로 했다. 'ㄴ'자형 본채 일부에는 서서 일할 수 있는 부엌을 만들고 구조가 약한 별채 외부는 조립식 패널로 바꾸면서 이곳에 양변기를 설치한 화장실을 마련하는 부분 리모델링이었다. 3천여만원 규모의 리모델링 공사였는데 친척들은 서울업체에 공사를 맡기라고 권유했다. 그렇지만 이씨는 동네업체에 공사를 부탁했다. 동네업체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대개 이웃동네 사람들이었다. 공사 기간에 이씨는 자연스럽게 이웃들과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지금은 반찬도 나눠먹는 사이가 됐다. 서울업체에 공사를 맡겼다면 이씨가 동네사람들과 이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었을까. 근처에 먼저 들어선 전원주택에는 첨단 보안시설이 갖춰져 있는 데 반해 이씨 집 대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다. 올해부터 농지법이 바뀌면서 도시민도 농가주택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전원생활도 이웃이 있어야 즐거운 법이다. 남을 조금만 배려하면 별난 외지 사람이 아닌 정다운 이웃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