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마케팅 기업인 AMI(Asian Market Intelligence). 최근 한국지사 사무실을 서울 종로구 연지동 대학로 근처 은석빌딩에서 중구 중림동으로 옮겼다. 도심 내 고객사들과 가까워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됐던 기존 사무실을 포기한 이유는 비싼 임대료였다. AMI의 리시케시 라마찬드란씨(28)는 "사무실을 넓히려고 건물주에게 공간을 더 달라고 요구했더니 다짜고짜 임대조건을 평당 보증금 40만원에 월 임대료 4만원에서 43만원에 4만3천원으로 올렸다"며 "입지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에 있는 지사들보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 본사에 더 보내 달라고 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서 한 걸음 벗어난 지역에 사무실을 구하는 외국 기업들이 적잖게 생겨나고 있다. 비즈니스 여건만 좋으면 임대료에 구애받지 않고 사무실을 구하는 메이저급 다국적 업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AMI와 사정이 비슷하다. 서울 강남에서 외국 업체들의 사무실을 주선하고 있는 황용천 해밀컨설팅 사장은 "아파트값 폭등세로 사무실 임대료까지 들먹거리자 좀 더 싼 곳을 찾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서울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불평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임대료 고공 행진은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해 말 벌인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한국 미국 일본 등 31개 국가를 대상으로 사업비용(Business Cost)을 따져본 결과 한국은 종합 1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사무실 임대료와 파견자 비용(주택임차비 포함) 항목에서는 각각 7위와 6위의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외국기업 간부들의 거주지도 한 단계 낮은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스위트400의 정경희 이사는 "한국에서 일하는 지사장급 외국인은 과거 성북동이나 이태원 등의 고급 주택을 많이 찾았지만 요즘에는 달라졌다"며 "비싼 임대료로 이들이 갖고 있는 한국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가족과 함께 2년째 살고 있는 스위스계 제약업체 J사의 부사장 C씨는 "현재 비용의 10%로도 동남아 지역에서는 정원이 딸린 근사한 집을 빌릴 수 있다"며 "지금도 고가인 부동산 값이 매년 오르는게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비싼 부동산 가격은 외국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학 박철순 교수는 "규모가 큰 다국적 기업 외에 상당수 외국계 중소 벤처기업들은 높은 임대료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나라에 비해 외자 유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욱진.임상택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