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의 집값이 급등한 것은 주택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경제.사회적 요인이 함께 작용해 벌어진 복합 현상이다. 저금리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시중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린 상황에서 학원과외 바람 재건축 기대심리 가수요 분양가 상승 등이 어우러져 발생했다. 집값 급등 현상은 당장 본격적인 이사철이 시작되는 올 봄 전세 대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 버블은 물가와 임금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는 짐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 바뀌는 교육정책에 요동치는 집값 =지난해 말부터 분당 등지에서 교육 여건이 좋은 강남으로 이사하려는 역류 현상이 심화되면서 아파트값 급등 행진은 시작됐다. 수능시험이 어렵게 출제된데다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 고등학교가 평준화되자 학군.학원이 좋은 강남 지역으로 이사 수요가 한꺼번에 몰렸다.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앞에는 경기 차번호를 단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었다. 부모들이 학생들을 태우고 온 차량이다. 현지 부동산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신도시 아파트를 팔고 강남으로 이사 오려는 수요자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근거 없는 소문에 치솟는 재건축 아파트값 =서울시와 일선 자치구는 오는 6월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집단 민원을 의식해 잠실 청담.도곡 등 저밀도지구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 틈을 노려 막연한 기대감으로 집값을 부추기는 세력이 등장했다. 서울시가 저밀도지구의 용적률을 2백%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확고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전후해 용적률 규제가 대폭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흘리며 아파트 값을 밀어올렸다. 떴다방 등 투기 세력의 조직적인 가격 부추기기와 가수요자들의 충동 구매가 어우러져 투기 붐을 만들어 냈다. ◇ 심각한 후유증 =당장 올 봄의 전세 대란이 걱정된다. 껑충 뛰어버린 매매가는 전세값을 자극해 전세물건 품귀를 부채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 없는 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변두리로, 수도권에서 다시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는 주거 불안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거 안정 없이는 경쟁국과의 경제전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우려할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주거비 부담이 가처분 소득의 40%를 육박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과도한 주거비 부담은 임금인상 압력으로 비화된다. 1980년대 말의 집값 상승은 노동조합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로 연결됐다. 이로 인해 기업의 진을 다 빼놓았다. 국가 경쟁력까지 갉아먹었다. 결국은 부동산값 거품이 지난 97년말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원인(遠因) 가운데 하나가 됐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집값 급등의 부작용은 근로의욕 감퇴, 계층간 위화감 조성, 서민들의 내집마련 의욕 상실, 물가상승 등의 경제 불안을 초래하게 마련"이라며 "임기응변식 대응보다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80년대말 서울 강남 압구정동 집값이 평당 1천만원을 돌파하며 집값이 뛰자 정부는 강남 수준의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강남 집값은 평당 2천만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 불안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땜질 처방이 낳은 후유증은 이처럼 오래간다는 얘기다. 유대형 기자 yoo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