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건설은 차입경영은 꿈도 꿀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매년 꼬박꼬박 1천억원에 가까운 부실을 해소하고 워크아웃 이전의 수주와 매출 규모로 복귀해 건설업계의 대표적인 경영개선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98년 부채비율 9천3백8%,당기순손실 1천6백1억원에 달했던 벽산건설은 올해 2백90억원의 이익 올릴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경영지표가 호전됐다. 벽산건설은 지난 98년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97년말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은행권으로부터 급격한 여신회수 압박,어음할인 전면 중단 등으로 최악의 상태에 직면했다. 여기에 신규 아파트 분양이 중단되고 기존 계약자의 해약도 속출해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하도급업체들 마저 잇따라 부도나는 바람에 속수무책이었다. 한 직원은 "당시 예비군 훈련을 나가는데 상사로부터 회사가 언제 넘어갈 지 모르니 수시로 전화하라는 말을 듣고 아찔했다"며 당시상황을 회상했다. 벽산건설 스스로는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자 "워크아웃"이란 낯선 제도에 몸을 맡겼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벽산건설의 임직원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약 1천2백명이던 직원이 5백50여명으로 감축됐고 임원도 절반만 남았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직원들은 직접 소비자를 찾아나서서 미분양 아파트 처분해 4백여억원의 현금을 회수하는 애사심을 보였다. 경영진의 솔선수범도 회사의 정상화에 톡톡히 기여했다. 전문경영인은 과감한 업무추진으로 회사내 동요를 최소화했다. 채권단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채권단이 경영진을 전폭적으로 믿고 1백억원을 출자전환해주고 1천4백50억원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해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준게 큰 힘이 됐다. 일정 기간 채무상환을 유예해줘 유동성을 확보해줬다. 회사차원에선 계열사 정리,보유 부동산 매각,유가증권 매각,사업부 정리 등을 착착 진행해나갔다. 워크아웃 이전 17개였던 계열사는 6개사로 축소됐다. 원가 절감을 통해 수익성도 높아졌다. 업계 최초로 규격화된 자재를 인터넷으로 경매,구매단가를 10% 낮췄다. 워크아웃이 계획대로 진척되자 매출은 안정을 되찾았고 부채비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경제위기 이전에 확보해둔 수주물량이 회사 회생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 99년 서울 금호동,시흥동,미아동,봉천동 등에서 1만여 가구의 아파트를 분양했다. 벽산의 워크아웃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소비자들의 인식이 개선돼 분양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올해 분양물량(12월 포함)은 경기도 용인과 안산,대전 내동 등 8천여 가구에 달할 전망이다. 또 재건축 재개발 등을 위한 올해 수주 물량만도 2조원을 웃돈다. 벽산건설 이용건 상무는 "벽산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혹독한 구조조정 속에서도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애사심으로 뭉친 직원,전문성을 갖추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린 경영진,채권단의 효율적 업무 지원 등으로 요약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워크아웃을 충실히 수행한 "우등생"의 반열에 가장 먼저오른 기업이다. 그러나 벽산이 홀로 설 수 있기 위해선 채무재조정 등 채권단이 지원해야할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