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전세대란을 피하기 위해 저밀도지구 아파트의 재건축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재건축에 들어가도록 한 정책이 오히려 전세난을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청담·도곡지구내 최대 단지인 도곡주공 1단지(2천4백50가구)의 경우 다른 단지보다 먼저 재건축사업 승인을 받기 위해 전체의 32%인 8백여가구가 고의적으로 아파트를 비워두고 있다. 재건축조합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빈집이 많아야 먼저 사업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나서자 아파트 소유주들이 경쟁적으로 '집비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도곡주공 1단지의 공동 시공사인 현대·LG·쌍용건설도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재건축 사업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사업승인 이후 이주비를 지급하던 관례를 깨고 이주비를 사전에 지급해 집비우기를 부추기고 있다. 영동주공 2단지(8백40가구)는 '집비우기'가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조합이 상당수 조합원들로부터 재건축사업이 본격 진행되는 단계에서 받게 되는 신탁등기 관련 서류를 챙겨뒀다. 이로 인해 청담·도곡지구만도 빈집이 줄잡아 1천가구는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밀도지구 아파트 재건축 조합들이 우선순위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최소한 1∼2년은 임대할 수 있는 주택을 허공에 뜨게 만든 셈이다. 청담·도곡지구의 빈집 1천가구는 소형아파트 의무비율을 30%로 잡았을 경우 3천3백가구의 초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당장 건설해야만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다. 도곡동 D공인 조모 사장은 "도곡주공 1단지는 지난 7월부터 빈집이 하나둘 늘고 있다"며 "보통 사업승인,신탁등기,이주비 지급,이주의 순으로 재건축이 진행되지만 이 지역에선 순서가 뒤바뀌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담·도곡지구 이외의 저밀도지구도 재건축사업 승인을 먼저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전세매물을 일제히 거둬들이고 월세를 놓는 바람에 전세물건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이로인해 상당수 아파트는 전세수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월세를 받기 위해 아파트를 비워두고 있다고 일선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전했다. P공인 관계자는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사업승인권을 가진 강남구는 조합들이 자율적으로 순서를 정하도록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비난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저밀도지구 재건축 우선순위를 조기에 확정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서울시와 일선구청이 내년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의식해서인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전세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