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남 사장은 롯데일본 현지공장과 10여개의 국내 롯데계열사를 두루 거친 탓에 지난 일들을 회고하자면 흥미진진한 장편소설 한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숱한 사건중에서도 임사장에게는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81년 롯데건설 중동사업본부장에 투입됐을 때다.

당시는 국내 건설업계의 중동진출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시기였다.

한국건설업체의 과다진출로 덤핑수주경쟁,수주에이전트에게 지출되는 막대한 커미션,중동국가들의 고의적인 공사대금 늑장지급 등으로 대부분의 공사현장이 수익을 내는 것은 고사하고 적자만 보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였다.

롯데건설은 중동사업을 활발하게 벌이던 평화건업이 어려움에 빠지자 이를 흡수.합병,본격적인 중동진출에 나선 상태였다.

당시 평화건업을 인수한데는 정부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말 못할 사연도 있다.

어쨌든 롯데건설은 중동진출의 "막차"를 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평화건업이 맡고 있던 10여건의 공사는 한결같이 골치덩어리였다.

현장 상황은 복마전을 방불케 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돼 이직률이 30%에 달했다.

남은 직원들도 무사안일과 적당주의에 빠져있어 공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회사는 적자규모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엉망이었다.

임사장은 "거기서 주저않을 수는 없었죠. 날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직원들과 함께하면서 엄격한 근무규율을 만들어 기강확립에 나섰습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편으론 엄격한 공정관리와 원가관리,자금조달의 일원화 등 경영을 하나씩 챙겨나갔다.

밤낮을 가리지않고 일에 몰두했다.

드디어 난마처럼 얽혀있던 공사장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총연장 1백11km의 알랴마니아~아담간 도로,리야드 공군본부 지하사령부,쥬베일공업단지 등 굵직굵직한 현장이 끝을 드러냈다.

공사를 마무리한 임사장은 중동시장 신규수주를 전면 중지시키고 국내로 철수할 것을 결심했다.

이에대해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중동현장을 포기하려거든 거기서 할복자살을 하라"며 격노했다.

의외의 반응에 임사장도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회장을 설득,철수결정을 이끌어냈다.

이같은 임사장의 과감한 결정으로 롯데건설은 중동에서의 적자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임사장은 "열사의 모래바람,예고없는 홍수 등 최악의 현장상황을 회사원들과 함께 꿋꿋히 이겨낸 정신력과 기술력이 지금의 롯데건설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