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소주택건설업체들 사이에서 기존 회사를 놔두고 새로 회사를 설립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신규 아파트 분양사업은 모두 새 회사 명의로 하고 기존 회사는 사실상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기존 업체 명의의 모든 자산도 당연히 새 회사쪽으로 옮겨 간다.

이들이 기존 회사를 놔두고 새 회사를 만들어 신규사업을 벌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한주택보증과의 ''악연'' 탓이다.

대한주택보증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만큼 기존 회사를 고의부도 처리하고 새 회사를 만들어 다시 출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게 이들의 속내다.

특히 지난해 주택공제조합이 대한주택보증으로 재출범하면서 신규업체들도 분양보증수수료만 납부하면 사업을 벌일수 있게 되자 이같은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주택사업을 벌일 능력이 있는 중소주택업체들의 절반은 새로 회사를 만들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중소주택업체들 사이에 이같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93년 대한주택보증의 전신인 주택공제조합 출범 당시 이들은 아파트사업을 하려면 의무적으로 분양보증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좋든 싫든 공제조합에 출자를 했다.

대부분 업체가 출자한 돈중 80%를 다시 융자받아 이자를 내고 사업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러다 IMF를 겪으면서 부실해진 공제조합이 대한주택보증으로 재출범할때 업체들은 출자금의 76%를 감자당했다.

실제 만져보지도 못한 출자금의 대부분이 순수 채무로 남게 된 셈이다.

게다가 최근 11개 건설업체의 무더기 퇴출에 따른 대한주택보증의 부실화로 다시 피해를 볼 위기에 처하자 이같은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형건설사와 중견주택업체들이 14일 건교부에 대한주택보증에서 빌린 융자금액의 15%를 1년안에 일시납부할 경우 나머지 금액을 탕감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중소업체들의 고의부도에 따른 피해를 막아보자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사태가 더이상 악화되기전에 가능성이 있는 업체에는 회생의 기회를 달라는 게 이들 업체들의 주장이다.

중소주택업체 대부분이 고의 부도를 내면 대한주택보증이 대신 갚아야 할 빚(분양·임대·대출·하자보증)은 10조원이상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산이다.

"건실한 업체들은 죄 없이 피해만 보고 있습니다.

빚으로 변한 출자금을 갚는 것도 억울한데 고의부도를 낸 업체들의 빚까지 떠맡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삼보종합건설 성진수 부사장)

대한주택보증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교부에 또 다른 숙제가 주어졌다.

유대형 기자 yoo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