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 이주비 1억2천만원, 벽걸이형TV 대형냉장고 무상 제공..."

최근 개포4단지 재건축 사업을 따낸 LG건설이 시공사 선정에 앞서 내건
조건이다.

조합원들의 이주비를 융자해 주고 3천만원 상당의 고급 가전제품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조합원들로서는 사업기간 동안 1억원이 넘는 큰 돈을 굴릴 수 있고 비싼
세간살이도 덤으로 받는다는 점에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결과적으로 LG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주택부문등 쟁쟁한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시공권을 따냈다.

LG건설이 이번 사업을 수주함에 따라 다른 업체들도 앞으로 높은 이주비를
경쟁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8일에 있을 개포1단지 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선정 경쟁에 나서는
업체들이 벌써부터 무이자 이주비를 1억4천만원까지 지급하겠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과거 과열됐던 재건축 수주경쟁이 재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과다한 이주비 지급이 일반 주택수요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시공사들은 늘어난 이자부담을 조합원이나 일반분양분 청약자들에게
전가시키게 된다.

업체들이 손해를 보면서 사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액이주비는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3년여전 건설업체들이 앞다퉈 높은 이주비를 지급했다가 외환위기가 터지자
돈을 회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일부 업체들은 대규모 자금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묶여 도산하거나
워크아웃 상태로 전락했다.

이로인해 분양보증 기관인 대한주택보증(당시 주택공제조합)이 부실화돼
공적자금이 5천억원이나 투입되기도 했다.

무분별한 고액이주비 제공이 국민세금을 먹어치웠던 셈이다.

고액이주비 지급은 건설회사가 단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데 유리할 수는
있다.

사업을 하다보면 전략적으로 "무리"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외환위기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웠던 교훈이 벌써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송진흡 기자 jinhup@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