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교포2세 제임스 박(42.한국명 박창호)씨.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그는 이달초 경매참가에 필요한 서류를 알아보기 위해 무려 7개 기관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담당공무원들로부터 "내 소관사항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알아서 챙겨라"는 답변만 들었다.

"공무원이 모르면 누가 아느냐"고 항의도 했지만 되돌아온건 "왜 여기서
큰 소리냐"는 핀잔뿐이었다.

박씨가 특히 골머리를 앓은건 인감증명서.

법원은 "대리인을 내세울 경우 이를 증명할 인감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던 것.

미국시민인 그가 내국인만 갖고 있는 인감이 있을리 만무했다.

구청 건교부 등 관련기관에 문의해 봤지만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행이 거대한 "지뢰밭"을 형성하고 있는 곳.

외국투자자들의 눈에 비친 국내 부동산시장의 모습이다.

"언제 어떤 일이 발목을 잡을지 모르니 발을 들여놓기가 두렵다.

빗장을 다 풀고 손님을 청해도 파티(투자유치)는 여전히 썰렁할 수밖에
없다"(컬리어스자딘 호주법인 대표 릭 윌리엄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투자실적도 미미할수 밖에 없다.

지난해말 현재 외국인이 취득한 토지는 여의도 면적의 13배인 1천1백31만평.

얼핏 보면 넓은 것 같지만 남한면적의 0.04%에 불과하다.

이중 교포몫을 제외하면 순수 외국인 보유분은 0.01%도 안된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스위스(1%) 핀란드(0.4%)에도 훨씬 못미친다.

폐쇄적인 국내관행을 "어느 곳에나 있을수 있는 특수성"으로 치부하더라도
외국투자자들이 건너야 할 "바다(리스크)"는 너무 넓다.

거래기준이 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산출하는 변변한 평가기관 하나 없고 부동산값도 주먹구구식으로
매겨져 있다.

도무지 믿을 구석이 없는 것이다.

"업무용 부동산은 거래 자체가 드문데다 계약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가격을 알수 없다.

공시지가 등 정부가 발표하는 평가자료조차 세수확보 차원에서 산정된 것에
불과하다"(비앤비코리아 최승호 소장)는게 공통된 반응이다.

한마디로 국내 부동산값은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수익률등 합리적 요인을 따지지 않은데다 가격을 끌어올렸던 투기요인이
사라져 가격이 내려간 것뿐"(외국계 기업 모이사)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후진적인 시장구조는 결국 거래의 안정성을 해치게 마련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에서도 감정평가기관의 수익성분석이
거래의 기준이 된다.

매수자와 매도자는 이를 근거로 부동산을 공산품 사고팔듯 한다"(KCS컨설팅
김화균 대표)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왔던 외국투자자들을 되돌아가게 하는 것은 또 있다.

국내기업의 세일즈기법이 너무 원시적이라는 것이다.

"상품성은 따지지 않고 원가(땅값 건축비 등)가 5백억원이니 5백억원에
팔아도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밑진다고 주장해 상담자체가 어렵다"
(한림부동산컨설팅 김상석 대표)

사는 사람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않고 파는 사람의 주장만 내세우니 상담이
제대로 이뤄지기 만무하다.

여의도 증권가, 테헤란로 금융가 등지의 알짜배기 빌딩이 30~40% 매물로
나와 있어도 거래가 드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외국투자자들은 부동산가격에 관심이 없다.

투자금액에 대비한 수익률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원화평가절하와 부동산가격폭락으로 업무용빌딩의 가격이 폭락했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임대료가 똑같이 내려 수익률에는 변함이 없다"(21세기컨설팅 양화석 대표)

"원가에 상관없이 수익률이 같으면 값은 같다"는 자본의 논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자산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외국인투자
유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같은 점을 인식, 정부는 부동산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등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조치들을 잇따라 내놓긴 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찌든 관습으로 인해 투자환경은 이에 훨씬 못미치고
있는게 현실이다.

외국인이 투자에 안달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

여기에는 정책 못지않게 우리의 인식도 확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 제임스 박 같은 교포가 고국에서 실망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