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다가구주택에서 3천2백만원에 전세를 사는 문모씨는
요사이 밤잠을 설친다.

지난 4월 전세계약기간이 이미 만료됐는데도 집주인 박씨가 전세자금을
돌려주지 않아서다.

집주인은 전세가 나갈 때까지는 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문씨가 더욱 억울해하는 것은 집주인의 태도때문.

2년전 주인은 전세값 3백만원을 올려달라며 "집없는 서러움"을 톡톡히
줘놓고는 이제와서 못준다며 버티는 것이 여간 야속하지 않은 것이다.

문씨는 서울민사지법에 가압류 신청를 해놓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K전자에 다니는 오승덕(37.회사원)씨.

최근 전세값이 많이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나가고 싶지만
집주인과의 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해 4월 전남 대불단지공장에서 서울 본사로 옮기며 급한김에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주변 시세보다 2백만~3백만원이 비싼 5천7백만원에
전세집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전세값이 폭락, 시세가 4천만원 밑으로 내려가면서 오씨는
다른 집보다 2천만원이나 비싼 값에 전세를 살게 된 것.

오씨는 집주인에게 최근 1천5백만원을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게 돼 형편이 어렵게 됐다며
오히려 통사정이다.

평소 집주인과 사이좋게 지내던 정을 생각하고 집주인이 실직당한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양보해야 하지만 오씨 역시 남보다 2천만원이나 비싼
전세를 살 처지도 아니어서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회사원인 전영식(36)씨는 "친구들이나 회사동료들과 술자리에 모이면
2~3명중 한명꼴로 전세문제로 골치를 앓고있다"고 말한다.

전세시장은 지금 "총성없는 전쟁터"다.

전세값 급락으로 시장이 심각한 "순환장애"를 일으키며 전세금 반환을
놓고 집주인과 전세입자간에 분쟁이 촉발되고 있다.

이른바 "전세대란"의 중증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다.

이에따라 올들어 서울지법등에 접수된 전세관련 가압류 신청등이 쇄도하고
있다.

서울지법에 따르면 지난 5월말 현재 본원에 접수된 가압류 신청은
<>5천만원미만 소액건수가 17만8천8백78건 <>5천만원이상 건수가
2만4천4백49건으로 모두 20만3천3백27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9만3천97건보다 두배이상 폭증한 것이다.

특히 월별 신청건수를 보면 지난 1월 3만3백여건에서 2월엔 3만7천여건,
3월 4만4천8백여건, 4월 4만5천여건, 5월 4만6천2백여건으로 대폭 늘어나고
있다.

또 정식 소송을 대신한 전세금 반환 관련 민사조정 건수는 올들어 같은
기간 1만1천7백59건이 접수돼 지난해의 6천1백76건을 훌쩍 넘어 버렸다.

이와함께 각종 소비자단체를 비롯 법률구조공단 상담 창구에도
"전세분쟁"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사철이었던 지난 3~5월에 전세계약이 끝나고 1~3개월동안 상담 소송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밀려오는 전세상담으로 상담기관들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하소연이다.

유영철 부장판사(서울지법민사합의 26부)는 "전세대란은 법원에서도
임대차 전담재판부를 신설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 방형국 기자 bigjo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2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