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여러가지 가격"을 갖고 있다.

정부가 조사발표하는 공시지가에서부터 감정가 매도호가 매수호가 흥정
가격 실거래가격에 이르기까지 한 물건의 값이 적어도 너덧가지는 된다.

아파트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정가에 가까운 통일된 가격을 형성하지만
토지나 임야, 건물 등의 부동산은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이다.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보통 2배에서부터 3배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해서 이같은 여러종류의 가격이 다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게
부동산의 특징이다.

이들 가격이 형성된데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고, 각 가격은 모두 실거래
가격이 될 "자격"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예를들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32평형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이 갑자기
이사를 가야할 사정이 생겨 이 아파트를 중개업소에 내놨다고 하자.

보통 거래되는 가격이 2억3천만원이지만 급히 팔아야 할 경우에는 매도
호가가 2억1천만원정도로 내려간다.

그나마 수요가 적은 비수기라면 어쩌다 나타난 매수자는 2억원에 사겠다고
주문하게 되고, 중개업소에선 2억5백만원에 계약을 맺자고 흥정가격을 내놓게
된다.

실거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 아파트값은 적어도 4가지나 되는 셈이다.

이에비해 아파트매물이 달리는 성수기에 급히 집을 구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 반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부동산개발업자가 아파트단지를 조성하기위해 주변땅을 거의 다 사들인 후
가운데에 섬처럼 남아있는 두세필지의 땅을 흥정할 때, 그 땅값이 시세의
몇배로 올라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이 급히 현금을 확보하기위해 내놓는 부동산은
시세의 절반이하로도 잘 팔리지 않는다.

또 개발계획이 추진되는 지역의 부동산은 그 계획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에따라 가격이 엄청나게 달라진다.

과거 부동산투기바람이 불때 개발정보를 미리 알고 땅을 확보, 일확천금
했다는 얘기가 아직 부동산가에 떠돌면서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도
부동산 가격의 이같은 속성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가격차이가 "현실"속에 존재한다는데 있다.

실제로 비슷한 조건의 부동산을 몇천만원씩 더주거나 덜주고사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부동산 매매계약을 할 때 조그만 부주의가 감당하기어려울 정도의
큰 손해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동산거래에선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가지변수를 치밀하게 고려한
후 흥정에 나서야 한다.

거래시기에서부터 매도나 매수기간,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흥정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같은 검토결과를 가격에 반영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물론 거래대상부동산이 정상적인 매물인가를 알아보고 현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부동산거래를 할 때는 공산품과 같은 의미의 정가가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 가격은 거래당사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싸게도, 또 비싸게도
매겨질 수 있다.

< 이정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