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사극에서는 산수화가 그려진 열두폭 병풍을 배경으로 십장생이
수놓인 보료에 기대어 앉은 양반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궁궐의 어좌 뒤쪽에 그려있는 산의 모습은 왕의 절대권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권위와 지위를 상징하는 배경에 늘 모습을 드러내는 산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지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산은 그 입지나 지세 등에 따라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작게는 가옥의 배치로부터 한 부락의 형성, 나아가서 한
국가의 도읍을 정할 때도 산과의 조화를 가장 큰 요건으로 여겨왔다.

조선조 초기에 서울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궁궐의
좌향을 정하기위해 서울의 주산문제를 놓고 대립하다가 정도전의 안이 선택
되자 무학대사가 조선의 운명이 500년에 그치고 임진, 병자년에 큰 난리가
날 것이라고 크게 탄식했다는 일화는 산의 정기가 얼마나 사람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나라의 지세는 북고남저형으로, 북쪽에서 강렬한 산세가 일어나
서남으로 흘러오면서 점차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보면 산세가 약한 곳은 양기가 성한 곳이요, 산세가 강한
곳은 음기가 성한 곳으로, 남양북음이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으로 따지면 남쪽지방은 남자가 잘생기고 북쪽지역은 여자가 아름다워
남남북녀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지방 산세와 관련하여 각 지방민의 성격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백두대간의 출발점에 있는 함경도 사람은 끈질기고 참을성이 많아
무슨 일이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마는 성격이고, 백두산의 기운을
받는 평안도 사람들은 고고한 기질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굽힘이나
타협이 없다고 한다.

황해도 사람은 높은 산의 지맥의 영향을 준하게 받아 인정 많고 온화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등뼈같이 일자로 뻗어 내린 태백산맥이 가로지르고
산세가 중후한 강원도민은 정직하고 순한 성품을 가졌다.

국토의 중심으로 전국의 문물이 집결하는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는 지세가
양명하여 재능이 많고 충분한 인물을 다수 배출하였다.

지세가 완만한 충청도 지방은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호인형으로 양반
기질을 형성하였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영향을 받은 경상도 사람은
강인한 성격으로 일당백의 기상을 품은 호한들이 많다.

호남지역 사람들이 총명하고 영리하며 예능에 뛰어난 것도 아름다운
산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산의 지세는 사람의 기질과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산은 스키장, 콘도, 복합 리조트 등으로 개발되는데 따라
닥치는 대로 파헤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이라는 명제로
산을 개발하는 것에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자원인 산은 우리 당대에 사용하는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높이 솟은 산이 많은 알프스에선 뽀족한 지붕이 많고 완만한 산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엔 둥그런 형태의 초가나 기와집이 많다.

산수화에 한가로이 낚시줄을 드리운 사람이 곧잘 등장하는 것처럼 사람과
개발된 산의 모습이 잘 어울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광영 < 한국부동산컨설팅 대표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