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활환경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가지를 들라면 의.식.주를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삶의 터전인 주택은 외부침입자로부터의 보호라는 본래 목적
외에도 경제력과 삶의 안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예로부터 토지의 선택과 건축물의 형상에 따라 그곳에 사는 인간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지게 되자 그러한 경험들이 풍수
사상으로 정립 발전됐다.

집터를 구하고 건물의 위치와 방향을 정하는 일, 건물의 형태, 건축의
시기와 과정, 건축방법에 이르기까지 풍수의 논리가 적용돼온 것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건축의 날짜를 잡을 때는 물론 건축과정마다 제의
성격의 특정의례를 거쳐왔다.

이것은 풍수본래의 뜻이나 방법에 근거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민간신앙에
의한 것이지만 적어도 풍수사상의 기반이 되었던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원리와
협동의 문화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와서 건물이 무너지고 새로 만든지 며칠이 안된 고가다리에 금이
가는 등 인간의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부실공사의 사례가 너무 많아진 것은
우리 고유의 건축의례를 살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왔다.

우선 집을 짓기 위해 터를 잡으면 주변환경에 맞는 건축계획을 세운후
집지음을 알리는 "텃고사"를 지냈다.

땅이란 만물을 잉태하는 어머니로 인식됐고 집은 땅을 모태로 태어난다고
생각했기에 "텃고사"는 집을 짓는 의식의 시작인 동시에 토지를 주관하는
신에게 그 땅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리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의식은 집짓는 사람의 주변이나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집터를 보이고 바람직한 건물배치의 조언을 구하는 장이었던 셈이다.

또 건물의 골격이 완성되면 상량제라는 의식을 하는데 이는 건물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인 뼈대의 완성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고 잘
지어졌는지를 품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목재는 좋은 것을 썼는지, 기울지는 않았는지, 안정감이 있는지 등을
여러사람들이 점검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건축법상의 중간검사와 감리를 자연스럽게 거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집을 짓는 모든 과정에서 이웃의 도움과 조언은 부실을 막는 감시의
기능을 가짐으로써 그만큼 정성을 기울이고자 하는 노력이 더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진보된 건축기술로도 조상들이 지은 옛 건물을 제대로 복원해내지
못하거나 새로 지은 건물이 얼마못가 무너지는 것은 모두 정성과 책임이
부족한데 따른 것이다.

우리는 요즘 선조들의 지혜를 가볍게 여긴 대가를 치르면서 살고 있다.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타고 갈 때,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안전하지 않은
실정이다.

집터를 구할 때부터 최대한 정성을 기울여 이것저것 따져보고 때마다
고사를 지내면서 집짓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추스르고 여러사람들이 부실을
공동감시하던 옛 선조들의 지혜를 오늘날 건설현장에서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정광영 < 한국부동산컨설팅 대표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