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규 < 건설교통부 기획예산담당관 >

최근 건설교통부가 21세기에 대비한 수도권의 장기적인 정비구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들이 다소 앞서가는 보도를 했다.

일부에서는 내년도 세제개편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주택양도소득세
감면조건 완화등과 맞물려 그동안 잠잠했던 부동산시장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기우이며 막연한 바람이다.

부동산의 가격도 다른재화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하여 결정되며 단기적으로는 정책의 혼란이나 경제불안정등
소비자들의 정보혼란 현상에서 연유하는 투기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은 장기적 요인이나 단기적인 요인으로 보더라도 부동산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없다.

우선 장기적 요인인 수요와 공급측면을 살펴볼때 지금은 공급이 넘치는
시기이다.

전국에 15만가구에 이르는 미분양 아파트가 누적되어 있으며 90년대 초반
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된 공단 및 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하여 전국 곳곳에
미분양공단과 미분양 택지가 쌓여 있다.

단기적 요인인 투기심리도 더 이상 발 붙일 곳이 없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과거 20년간 극심한 부동산 투기현상을 겪으면서도
시행하지 못했던 부동산실명제가 금년 7월1일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다.

금융실명제도 정착되어 가고 있고 토지종합전산망도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 이제 어느누구도 정부의 감시망을 피해서 몰래 토지거래를 할수 없다.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한 정부의 의지도 그 어느때 보다 단호하다.

과거에는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부동산경기를 부추기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는 감히 생각할수도 없는 발상
이다.

아직도 돈이 있으면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70% 가까이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 보자.과거에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91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가격하락이나 거래부진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었는가.

만일 91년에 땅을 팔아 은행에만 맡겼더라도 지금쯤은 못돼도 한배 반이상
으로는 불렸을 것이다.

거의 5년동안이나 부동산경기가 침체되었으니까 이제는 누가보더라도
올라갈 때 아니냐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부동산가격이 정상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있고 이제 그
정상적인 가치이하로 가격이 내려가 있다면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동산가격은 아직도 그 진정한 가치에 비해 2배이상
부풀려져 있다.

그 근거로서 집값과 전세값의 차이를 들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서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약2억원,
전세값은 약 1억원이다.

1억원(주거)의 가치밖에 안나가는 집이 왜 2억원에 거래되는 것일까.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1억원의 가치를 2억원으로
평가한 것이다.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만 없애주면 집값은 그 정상가치인 1억원대로
내려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땅값전체를 합한 것은 GNP의 6배에 이른다.

세계에서 땅값 높기로 소문난 일본의 4배에 비해서도 높은 실정이고 미국의
0.7배에 비해서는 터무니 없이 높은 비율이다.

부동산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심리만 없앨수 있다면 우리의 부동산
가격은 지금보다 절반가까이 낮아질 것이다.

부동산정책에 관한 한 우리국민들은 정부에 많이 속아왔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만 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부동산에 대한 환상은 91년부터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

이제 아무리 경기가 침체되어 있어도 정부는 부동산경기를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만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4~5년간 과감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던 "공급확대"와
"가수요억제"라는 두개의 수레바퀴는 "돈이 있어도 결코 부동산에는 투자
하지 않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때까지 계속 돌아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