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내건 행사를 후원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는 8일 일부 매체에 10일 서울시청 주변에서 범국민추모제를 연다는 내용의 지면광고를 냈다. 범국민추모제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산화한 열사를 기리기 위해 1990년부터 매년 6월 개최된 행사다. 추모위는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등 진보진영 및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

올해 추모제는 ‘열사의 염원이다. 민중 세상 가로막는 윤석열은 퇴진하라!’를 메인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추모제에서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온 건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차였던 2014년 행사 이후 9년 만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정권 퇴진 구호가 없었다. 지면광고에는 추모제 후원 기관으로 민주화사업회가 단독으로 명기됐다. 민주화사업회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6년째 이 추모제의 후원 기관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민주화사업회는 2001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의해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6·10 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민주화사업회의 올해 예산은 약 198억원이다.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이 174억원, 위탁 수입이 24억원이다.

민주화사업회는 ‘민주화운동 정신계승 협력사업 공모’를 통해 범국민추모제를 선정해 공동 주최 형태로 지원한다. 올해 지원하기로 한 예산은 행사 무대 설치비 등 300만원이다. 민주화사업회는 지난 5년간 추모제에 매년 100만~3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민주화사업회는 “곧 공모 선정 단체 취소를 통보하고 향후 3년간 공모 지원 자격을 제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공모 선정 단계에서 행사 주최 측이 제출한 계획서 등에 정권 퇴진 구호는 들어 있지 않았다”며 “지원금은 사업 결과 보고서를 검토한 뒤 후불로 지급하게 돼 있어 아직 지출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률에 의해 설립돼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나랏돈을 받아 정권 퇴진 운동을 하겠다는 단체를 후원한 꼴”이라며 “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취지가 한 정파의 편향된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