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모빌리티 혁신을 좌절시킨 정치권에서는 뒤늦은 반성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가 혁신의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자성이다. 타다 금지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의 ‘내 편 네 편’ 갈라치기식 입법의 문제가 지난 1일 대법원의 타다 무죄 판결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회가 타다 금지법을 폐지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2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혁신 경제와 혁신 기업을 탄압하는 정당이 됐다”며 “타다 금지법에 대해 당 차원에서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썼다. 최 소장은 “타다 금지법을 폐지해야 한다”고도 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선임행정관을 지낸 여선웅 전 직방 부사장도 전날 “타다의 승소는 민주당의 패소”라며 “민주당의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많은 불편을 초래했는지 처절하게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고 했다. 스타트업 성장 지원을 위한 여야 국회의원 모임인 유니콘팜도 “국회가 타다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타다와 같은 서비스는 없어지지 않았다”며 “혁신적 가치가 창출하는 시대적 흐름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길을 찾는 게 국회의 역할”이라고 했다.타다 금지법 본회의 표결 당시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최운열 전 의원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기술 진보의 흐름을 국회가 막을 수 없다”며 “타다를 막는 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은 기술 진보로 생겨나는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타다 금지법은 진보 자체를 막아버렸다”며 “그 결과 서비스를 이용한 170만 명을 비롯해 전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했다.최 전 의원은 그러면서 당시 타다 금지법을 주도한 박홍근 민주당 의원 등 정치인들을 국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최 전 의원은 “기득권에 기대는 정치인은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치가 국민을 무서워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정작 타다 금지법을 주도한 박 의원은 통화에서 “타다 금지법은 타다 서비스 전체를 금지한 법이 아니다”며 “합법적 테두리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를 두고 “자신이 주도한 타다 금지법으로 타다 서비스가 아예 사라졌는데 ‘다양한 서비스’를 운운하는 건 궤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한재영/설지연/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
“혁신을 빙자한 사기꾼(타다)에 대한민국 전체가 휘둘려왔다.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택시 제도를 무력화하는 영업 전략을 채택한 범죄자 집단이다.”2020년 3월 6일. 자정을 6분 남기고 일명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경진 무소속 의원이 타다를 ‘사기꾼’이라고 하자 의석에서는 웃음소리와 함께 “잘한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김 의원은 2019년 7월 타다 금지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총선을 40여 일 앞두고 택시업계 표 앞에 여야 의원은 하나였다. 이날 국회는 타다 금지법을 찬성 169표, 반대 7표, 기권 9표로 가결했다. 김 의원과 함께 법안 통과의 최전선에 선 것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2019년 10월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택시의 서비스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택시 혁신 촉진법’”이라고 주장했다. “타다가 대법원에 가면 백전백패 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국민은 택시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전 VCNC 대표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받은 재판에서 지난 1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 의원의 지역구는 법인택시 업체만 20여 곳에 달하는 서울 중랑구다. 그는 21대 국회에 재입성해 지난 4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공약으로 혁신을 외치던 여야 지도부도 표 앞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인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론은 아니다”고 했지만,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전화 단속을 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아예 ‘찬성 당론’을 정했다. 당시 유일하게 반대 토론에 나선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20대 국회의 마지막 모습이 미래로 가는 첫차가 아니라 과거로 가는 막차를 타고 있는 것”이라며 “정말 비극”이라고 했다.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이틀 만에 상임위 통과“오늘 통과될 법이 ‘타다 금지법’입니까.”(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타다’와 택시 모두를 위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김경욱 당시 국토교통부 2차관)‘타다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석 달 전인 2019년 12월 6일. 법안은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었지만 토론은 이 문답이 사실상 전부였다. 모빌리티 혁신에 대한 논의나 타다 측 주장을 대변해줄 의원은 없었다. 박 의원과 보조를 맞춘 듯한 김 전 차관의 문답 뒤 타다 금지법은 30명 의원 만장일치로 상임위를 통과했다.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거치면서 여야 이견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국토위 소속 의원 30명 전원이 택시업계 눈치를 봐야 하는 지역구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토위 여당 간사는 윤관석 민주당 의원, 야당 간사는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이었다.당초 정치권에서는 20대 국회에서 타다 금지법이 처리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때 혁신 산업 아이콘으로 떠오른 타다와 이재웅 전 쏘카 대표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4월 총선이 다가오자 법안은 이틀 만에 상임위를 통과했다.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검찰이 ‘불법 콜택시’라며 이 전 대표 등을 기소하자 “너무 성급했다”고 비판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타다 제도화법’”이라며 입장을 바꿨다.이듬해 3월 4일 타다 금지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었다. 전통적으로 법사위는 18명 의원 전원의 동의를 얻은 뒤 법안을 본회의로 넘기곤 했지만 이 법안은 예외였다. 이철희 당시 민주당 의원과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공교롭게도 법사위 18명 중 이 두 명만 지역구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의원은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다. 여상규 법사위원장(미래통합당)은 복수의 반대 의견에도 의사봉을 두드렸다.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타다 멈춰 세운 국회의원들, 표로 심판하자.”2020년 3월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 박병원 당시 한국경제신문 객원 대기자는 특별기고를 통해 이렇게 호소했다. “퇴행적인 입법으로 나라 경제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든 국회의원들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며 한 달 뒤 치러질 20대 총선에서 타다 금지법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낙선시키자고 촉구한 것이다.하지만 총선 결과는 정반대였다. 타다 금지법에 찬성한 의원 상당수가 금배지를 단 반면, 반대표를 던진 의원 7명 중 6명이 21대 국회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혁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저앉힌 사람들은 여전히 기득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지난 1일 이재웅 전 쏘카 대표의 말 그대로다. ○찬성 당론, 배경 알고보니타다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만 놓고 보면 박 대기자의 호소가 현실화됐어야 한다. 당시 타다로 생계를 이어가는 운전자가 1만2000명에 이용자는 170만 명에 이르렀다. 잠재적인 타다 이용자까지 감안하면 수백만 명이 타다 서비스 운영을 지지했다. 반면 타다가 주로 영업하던 서울 일대의 택시 기사는 8만 명, 개인택시 기사는 5만 명에 불과했다. 국회의 타다 금지법 처리를 앞두고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77%가 ‘타다 서비스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한 이유다.하지만 의원들의 정치적 계산은 달랐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모두 당론으로 찬성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특정 법안에 찬반 당론을 정하는 것도 드물지만, 양당의 입장이 같은데도 굳이 당론으로 의원들에게 찬성 투표를 요구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택시 기사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지도부의 우려가 반영됐다.민주당 관계자는 “본회의 표결에서는 찬성 투표가 압도적이었지만 실제 당내 여론은 찬반이 비등비등했다”며 “서로 ‘상대 당이 적극 찬성하는데 우리 쪽 입장이 모호하면 택시 기사들의 표를 잃을 수 있다’고 걱정해 찬성 당론을 정했다”고 전했다.한 달 뒤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을 노리던 의원들은 앞다퉈 법안에 찬성했다. 법안에 반대하고 낙선한 김용태 전 의원은 “반대 의원은 대부분 정계 은퇴 선언 등으로 21대 총선에 나오지 않기로 결정된 인사들로 나를 빼고는 선거에 부담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국회 구조개혁 절실”이 때문에 제2의 타다 금지법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게 국회 안팎의 관측이다. 다수가 찬성하는 혁신이라도 조직된 소수의 반대를 거스르면 선거에 불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타다 이용자는 해당 서비스 중단만 놓고 지지 정당을 바꾸지 않겠지만, 택시 기사들은 법안 처리 결과에 따라 특정 정당을 향해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할 수 있다”며 “국회가 변화를 지원하기보다는 변화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설명했다.타다 금지법에 이어 ‘직방 금지법’, ‘로톡 금지법’이 계속 나오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비례대표 비중을 늘리거나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드는 만큼 의원들이 개별 지역구의 이해관계에 갇히기보다 국민들의 폭넓은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