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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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들이 올 들어 적극적인 경영감시에 나서면서, 주주 행동주의 실현을 위한 상법적 근거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여부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에선 이사에게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충실의무를 의무화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러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넣도록 한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며, 여야 협조를 촉구하고 있다. 이사가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다할 것이 아니라, 개별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애초에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은 상충되지 않는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2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상장사들의 모임인 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총주주 추가를 골자로 한 '상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와 법무부에 제출했다. 상법은 법사위 소관이다.

의견서에서 상장협은 상법상 충실의무에 관해 그 대상을 회사로 규정하지, 개별주주까지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회사, 지배주주의 이익과 일반주주의 이익을 구분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상장협은 "주주평등의 원칙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모든 자본거래는 회사와 지배주주에게만 이익이 되면서 일반주주에게 손해가 될 수는 없다"면서 "설사 위법한 경우에도 현행법으로 충분히 구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투연(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현행 상법 미비에 따른 일반주주 권익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꼽는 사례가 LG화학의 물적분할이다. 작년 초 LG화학이 물적분할을 통해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하면서, 모회사인 LG화학 주주들의 피해가 극대화됐단 비난이 컸다. 기업은 성장사업에 자금을 끌어올 수 있으니 좋지만, 투자자들은 주식가치가 떨어질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단 얘기다.

상장협은 "회사와 지배주주에게 이익이 됐지만 일반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돼 손해를 입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지만, 지분율 평가 시 제3의 주주 편입으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지분율이 동등하게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LG화학에 대해서는 "일반주주는 물적분할 이전이나 인적분할 이슈가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 회사에 대한 유효지분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배력(지분)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국민의힘 당사 앞의 정의정 한투연 대표. 사진=한투연
국민의힘 당사 앞의 정의정 한투연 대표. 사진=한투연
재계의 반대의견 전달은, 최근 한투연 등 투자자연합과 경제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개정안 통과 여론을 키우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투연은 지난달 3일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 충실의무를 확대하도록 동참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 지난 16일에는 민주당의 박주민, 이용우 의원과 유관 단체들이 모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일반주주 피해 증언대회'를 열고 주주 권익침해 사례와 해소방안을 공유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목표는 물적분할과 합병, 지주사전환, 주식교환, 공개매수 등 일반주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안들이 이사회를 쉽게 통과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주주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면, 이사들도 이들 소수주주 눈치를 봐가며 의사결정을 할 것이란 얘기다.

특히 '한국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방법 중 하나로 상법 개정안 통과를 꼽고 있다. 소수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한 방안을 법으로 보장해 둠으로써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활동이 보다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다.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일반적으로 상법은 국민이 먹고사는 민생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있는데, 상법 개정안은 1400만 투자자들 위한 민생 법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충실 의무를 확대 적용하면 이사회 결정이 보다 신중해지니 주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는 셈인데, 이 작은 변화가 주주가치 제고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올라온 관련 상법 개정안은 두 개다. 민주당 이용우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것인데, 아직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박 의원은 '총 주주'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법사위 소위에서 논의가 되려면 일단 여야 간사가 합의를 해야 하는데, 당장 의견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내년 상반기 법안이 임기만료되기 전까지, 즉 올해 안으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이 목표다. 여론 공론화를 위해 다양한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 한 관계자는 "지배주주를 위한 결정을 내려서 소액주주들을 희생시키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만큼 해당 개정안들이 나온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개정안은 일반주주와 회사를 보는 잣대가 다르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재계에서 지적될 수 있는 지점이다. 법으로 명문화하는 과정인 만큼 개정안 통과를 두고선 학계와 실무계의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