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동원 관련 유적지 8천600여곳…체계적 조사 필요"

[※ 편집자주 =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흔적을 간직한 인천 '미쓰비시 줄사택'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하는 가운데 줄사택은 한·일 양국 사이의 아픈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연합뉴스는 줄사택의 역사와 과거 진행됐던 보존·철거를 둘러싼 논란, 현재 모습과 전문가 의견 등을 조명하는 2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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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흔적 줄사택]② 아픔 간직한 좁은 방…"기억해야"
"여기가 원래는 우리 집이 있던 자린데…."
지난 21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 행정복지센터.
문화해설사 김재선(68)씨는 번듯하게 자리 잡은 건물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쪽 벽면에는 '부평의 아픈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라는 설명만 간단히 적혀 있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살던 '미쓰비시 줄사택' 3개 동이 있던 자리였다.

당시 군수물자 공장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은 줄사택에서 합숙 생활을 했다.

작은집이 나란히 줄지어 연결된 구조인 탓에 줄사택이란 명칭이 굳어졌다.

광복 이후부터는 일반인이 들어와 살았다.

김씨도 1955년 줄사택에 있는 7평 남짓한 집에서 태어났다.

김씨를 포함한 가족 6명은 옆집을 사들이기 전까지 한집에서 뒤엉켜 살았다고 했다.

1층짜리 건물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구조다 보니 생활 환경은 변변치 않았다.

수도나 화장실은 동별로 양 끝에 하나씩만 있어 아침저녁으로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김씨는 "수돗물도 정해진 시간에만 나오던 시기였다"며 "집마다 천장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여서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면 막대기로 툭툭 쳐서 옆집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강제동원 흔적 줄사택]② 아픔 간직한 좁은 방…"기억해야"
미쓰비시 줄사택은 1950년대 16개 동 가량이 남았다가 개발 사업 등으로 상당수가 철거돼 현재는 부평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6개 동만 남아있다.

그마저도 건물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외벽이 갈라지고 지붕에는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줄사택 곳곳에는 '철거 예정'이라는 빨간 글씨가 적혀 있고 쓰레기 더미가 나뒹굴었다.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사람이 살았지만, 부평구가 줄사택을 매입하고 보상이 이뤄지면서 지금은 하나둘 떠나 완전히 비어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줄사택이 사라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고, 2015년부터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며 줄사택의 역사적 의미와 보존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그는 "줄사택을 없애면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알아도 나중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며 "일제 수탈의 증거를 남겨 다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너져 가던 공간은 최근 지역 민관협의회를 통해 줄사택 보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데 이어 부평구가 국가등록문화재 등재 신청을 추진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부평구는 줄사택 6개 동 가운데 구가 매입을 완료한 4개 동에 대해 오는 5월까지 국가등록문화재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줄사택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제강이 강제 동원한 조선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장소로 평가받는다.

보통 1개 동에 10개 호가 이어져 있는 구조인데 건물 철거 과정에서 철모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곳에 살던 조선인 노무자들은 2만1천㎡ 규모 공장에서 군사용 특수강판이나 포탄 등을 만드는 공정에 투입됐다.

일본인과 달리 사원 직급을 받지는 못하고 견습생이나 잡부 등으로 일했으며, 다치는 일이 빈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제동원 흔적 줄사택]② 아픔 간직한 좁은 방…"기억해야"
줄사택 보존 사례를 계기로 국내 강제 동원 관련 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에 따르면 남북한을 통틀어 강제 동원 관련 유적지는 모두 8천600여곳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 문화재로 등재돼 있지 않거나, 제대로 된 학술 조사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25일 "부평만 해도 일본 육군조병창에서 비롯된 각종 강제 동원 흔적들이 별다른 관리 없이 방치되거나 개발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며 "이들 유적에 대한 집단적인 학술 조사와 발굴 작업과 함께 정부 차원의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