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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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 진행되던 업무를 부처 통상 업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진일보한 변화다. ”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 광범위한 인사검증 업무를 하는 데 대한 국회의 비판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이 같이 일축했다. 한 장관은 인사검증에 현직 검사들이 참여해 검찰권이 비대화될 수 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검증의 전문성’을 들어 강변했다. 그는 관련 질문에 “우리나라에서 (인사)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기존 우수한 분들을 모셔서 업무에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당초 대통령실 산하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하던 인사검증 업무는 법무부로 지난해 6월 이관됐다. 한 장관의 말을 종합하자면 이를 통해 인사검증의 투명성과 객관성, 우수한 검사인력을 통한 검증의 전문성이 제고됐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 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만에 낙마한 이른바 ‘정순신 사태’이후 인사정보관리단과 관련한 한 장관의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

한 장관은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일은 맞았던 것 같다. 지금 같은 시스템이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 같다”고 구조적 문제를 거론했다. 가족의 송사 문제는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한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본적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업무 이관 당시 “제 입장에선 짐과 책무에 가깝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제가 비난받지 않겠나”라고 했던 발언과도 온도 차가 생겼다.

정 변호사는 아들의 학폭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검사였던 당시 자신의 법적 지식을 활용해 2차 가해성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정 변호사 아들은 정시로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에선 구조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가 이미 5년 전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언론에서는 임명 하루도 안 돼 해당 문제를 제기했다. 정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재직한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지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3차장검사였다. 검증 라인에 있는 대통령실 이원모 인사비서관도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몰랐다”는 법무부와 대통령실의 해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일 “학교 문제가 아닌 계급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SNS에 “검색 몇 번 해보면 알 수 있는 사건에 대해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대통령실, ‘전혀 몰랐고 알기 어려운 구조’라는 한동훈 법무부장관까지 하나같이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며 “검증 담당자들이 온통 같은 ‘친윤검사‘ 식구들이니 ‘프리패스’한 것 아니냐고 국민들은 묻는다”고 주장했다.

전날 ‘정순신 사태 진상규명 TF’를 발족한 민주당은 진상을 규명하고 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단장을 맡은 강득구 의원은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검사정권이라고 검사 출신들을 전문성과 상관없이 정부 곳곳에 심는 것도 모자라,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경찰에까지 손아귀를 뻗친 것”이라며 “‘검사가 추천하고 검사가 검증하고 검사가 임명하는 끼리끼리 인사시스템’임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해 이달 안에 학폭 이력의 정시 반영을 검토하는 등의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대통령실은 정 변호사 사퇴에 “공직 후보자가 사전 질의서에 답변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는지 등 기술적으로 실무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문제들이 굉장히 많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역시 사전 질의서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정 변호사의 처신을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