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바이현·룽징서도 왕래 포착…"전면 개방은 시기상조" 중국 훈춘 통상구를 통해 중국의 화물트럭이 이틀 연속 북한 나진선봉으로 물자를 운송했다고 대북 소식통들이 1일 전했다. 훈춘의 한 소식통은 "전날에 이어 오늘도 중국의 화물트럭 4∼5대가 훈춘 취안허 통상구를 통해 두만강 대교를 넘어 북한 나진선봉으로 들어갔다"며 "주요 물자는 나진선봉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요구한 임가공 물자이지만, 일부 물품은 북한이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내일도 4∼5대의 화물트럭이 취안허 통상구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난 3년간 중국이 변경 지역 육로를 봉쇄한 이후 중국의 화물트럭이 이틀 연속 북한으로 물자를 운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역 완화와 함께 중국은 지난 8일 주변국 변경 봉쇄를 해제, 육로 운송이 자유로워졌으며 이보다 앞선 지난 4일 취안허 통상구를 통해 중국 화물트럭 여러 대가 나진선봉으로 들어간 바 있다. 당시 훈춘의 대북 소식통은 "북중 육로 봉쇄에 따라 임가공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온 나진선봉 진출 중국 기업들이 중국의 물자 반입 허용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수용한 것"이라며 "당분간 부정기적으로 중국 화물트럭이 북한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중국 창바이현에서 화물트럭이 두만강을 건너 북한 혜산으로 넘어가는 장면도 포착됐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앞서 작년 말에는 중국 룽징 쓰타이쯔 통상구를 통해 북한 내 화교들이 중국으로 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중국 당국의 국경 봉쇄 해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확산하는 코로나19의 유입을 우려해 교역과 왕래에 신중했던 북한이 최근 중국 내 코로나19 진정되자 제한적으로나마 변경 봉쇄를 완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인민군 창건 75주년(건군절)을 앞두고 코로나19 의심 발열환자가 발생해 평양이 봉쇄된 상황에서 북한이 당장 전면적인 북중 국경 개방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의료 자원이 부족한 북한은 물자난 해결도 시급하지만, 코로나19 유입을 봉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중국의 코로나19가 확실히 진정되고, 북한 내 발열 환자도 수그러들 때까지 변경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3월께나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남쪽 체제 중심의 통일' 발언에 대해 1일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치면 인수가 아닌 합병"이라고 설명했다. 권 장관은 이날 채널A '뉴스A 라이브'에 출연해 "M은 합병(Mergers)이고 A는 인수(Acquisitions) 혹은 흡수로 통일방식에서는 흡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A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M을 추구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M(합병)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서 평화통일을 하자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권 장관은 "독일에서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된 이후에 진보, 보수할 것 없이 우리 정부 중에서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는 하나도 없다"며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권 장관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종교, 사회, 스포츠단체의 대북 접촉을 지원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종교단체, 사회단체, 스포츠 단체들이 먼저 앞장을 서는 것도 남북 간의 단절을 끝내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며 이들 단체의 대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권 장관은 "북한이 어떤 도발을 했을 때 우리가 유화적으로 그냥 감수하고 넘어가는 것은 남북관계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고 북한에게도 좋지 못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재일조선족 작가로 활동하는 이홍매(56) 전 길림신문 특파원이 조선족의 일본 생활을 소개한 에세이집 '일본에서 살기'(도서출판 북코리아)를 출간했다. '일본에서 살기'는 조선족으로서 그가 25년간 일본에서 살면서 겪은 문화 충격과 차별 그리고 제2의 고향으로 정착하기까지의 좌충우돌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이 작가는 1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1996년 당시에는 일본에서 조선족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그냥 중국인이라고 대답했었다"며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온 이들이 8∼10만에 이르고 경제적·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도 많아 당당하게 조선족임을 밝히고 산다"고 말했다. 책에서 그는 일본에 건너오면 먼저 월셋집을 구할 때 보증인으로 현지인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어려움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이민 초기 물가가 비싼 일본서 집을 사는 건 엄두도 못 냈고 월셋집을 얻어야 했는데, 연대책임을 지는 보증인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며 "외국인을 경계하는 의식도 있어서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조선족으로서 일본에 정착하려면 언어보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책에서 재일조선족의 제일 큰 고민으로 자녀들의 현지화를 꼽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을 터전으로 인식해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그는 "조선족 1세대는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에 능통하고 다문화 수용성도 높지만, 대부분의 차세대는 일본어만 할 줄 아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중국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 학부를 졸업하고 연변텔레비전방송국 문예부 기자로 활동하던 이 작가는 1996년 남편의 유학으로 함께 일본에 이주했다. 이후 일본 지역신문사 기자를 거쳐 2021년까지 중국 길림신문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조선족 문학지 등에 수필과 소설 등을 발표하면서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