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범준 기자
기획재정부가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1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기재부에 지시하자마자다. 윤 대통령이 기재부를 질책하는 듯한 발언을 한 걸 감안하면 정부가 세액공제율을 최소 10%대 혹은 그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내년 초 이런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8%도 높다던 기재부

'세수 줄어들라' 8% 고집한 기재부…尹 질책에 "1분기 추가 입법"
기재부는 지난 7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국가전략기술(반도체, 백신, 배터리)의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중견기업(8%)과 중소기업(8%)의 공제율은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는 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늘려달라고 건의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공제율 대폭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기재부에 전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설비투자 공제율(대기업 기준)을 20%와 10%로 높이는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8% 세액공제율도 결코 낮지 않다고 버텼다. 일부 의원이 대만보다 지원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자 공식 설명자료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대만의 반도체 설비투자 공제율은 5%이고, 일본은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게다가 내년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투자 증가분 세액공제(10%)를 더하면 최대 18%까지 세액공제가 된다고 했다.

기재부는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여당안(양향자 무소속 의원 대표발의 법안)에 대한 세수 감소액을 추계한 결과 △2024년 2조6970억원 △2025년 2조8186억원 △2026년 4조4094억원 △2027년 4조4599억원 △2028년 4조6835억원 △2029년 4조8139억원으로 나타났다.

○尹 질타에 기재부, 부랴부랴 재검토

결국 지난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 원안이 통과됐다. 기재부가 워낙 완강하게 반대했고, 여야 모두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및 지역화폐 예산 부활 등에만 매몰돼 제대로 논의를 못 한 탓이다. 담당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수백 건의 법안을 2주 만에 ‘벼락치기’로 처리하면서 이 법안을 심사할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다.

본회의 이후 경제계는 기재부의 고집과 여야의 무기력을 질타했다. 특히 미국이 지난 8월 반도체투자 세액공제를 25%로 올리는 내용의 법안을 확정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반도체 지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권에서도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가 야당보다 더 낮은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주장해 관철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기재부가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7일 “반도체 기업 등의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 있는 추가적인 세액공제 방안을 내놓을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검토를 마친 뒤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30일 “반도체 세제 지원안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실상 기재부를 질타하자 기재부 세제실은 곧바로 세액공제율을 더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1분기 임시국회에서라도 입법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적어도 야당안(대기업 기준 10%)보다는 더 높은 공제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당도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새 법안 처리에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여야가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까지 바꿔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도병욱/고재연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