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미츠호 부산 입항 언론 공개…"美전략자산 전개에 대한 답은 북한에 달려"한미일 훈련 계획 밝혀…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일반인 견학도 '떠다니는 군사기지'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CVN-68)가 막강 전력을 자랑하며 부산 작전기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8일 오전 부산으로 입항한 니미츠호는 332m 길이의 선체를 부두에 접안한 채 한국 해군의 환영식으로 국내 일정을 시작했다. 해군작전사령부 군악대의 연주 속에 니미츠호를 포함한 미 제11항모강습단을 이끄는 크리스토퍼 스위니(소장) 강습단장과 크레이그 시콜라(대령) 니미츠호 함장이 화동의 꽃목걸이를 받았다. 이어 항모 측면과 지상을 잇는 현문(舷門)을 통해 취재진 80여 명이 항모에 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아랍에미리트 등의 외신 20여 매체가 취재에 동참했다. 선박 바닥에서 함교 가장 높은 곳까지 높이가 대략 23층 건물 수준이라는 항모 선체의 중간쯤 되는 위치로 들어갔음에도 좁은 계단을 타고 4층가량 올라가야 비로소 햇볕이 드는 갑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축구장 3개 넓이에 해당하는 갑판에는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조종간을 잡아 잘 알려진 전폭기 F/A-18 '슈퍼호닛'이 즐비했다. 미군의 첨단 전력을 상징하는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통제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를 비롯해 대잠전을 수행하는 MH-60R, 구조탐색용 MH-60S 헬리콥터 등도 갑판을 장식했다. 미 해군 관계자는 "현재 니미츠호는 항공기 70대를 싣고 있고 갑판에 약 절반이 올라와 있다"며 "승조원은 5천여 명이고 선박 운영과 항공 담당 인원이 대략 절반씩"이라고 말했다. 줄지어 들어선 항공기들 사이에서도 대규모 취재진이 기자회견
공대공 무장분리·공중 기총발사 시험…특별한 문제 없어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초음속 돌파와 야간비행에 이어 비행 중 무장을 기체에서 분리하고, 기총을 발사하는 시험을 각각 성공했다. 방위사업청은 28일 KF-21이 경남 사천에 있는 공군 3훈련비행단에서 이륙해 공대공 무장분리 시험, 공중 기총발사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험은 전투기에서 무장을 분리하거나 기총을 발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기체 구조, 엔진, 공기역학적 특성 변화 등을 점검해 안전성 여부를 검증하고, 무장 운용과 관련된 항공전자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목적으로 처음 시행된 것이다. 이날 시험비행에서 KF-21 시제 2호기는 오전 10시 54분 이륙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Meteor) 시험탄으로 무장분리 시험을 수행하고 12시 9분에 착륙했다. 시제 3호기는 오전 11시 18분 이륙해 공중 기총을 100여 발 발사하고 12시 32분에 지상으로 복귀했다. 시험비행 중 특별한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아 정상적으로 종료됐다. 앞서 작년 7월 처음으로 날아오른 KF-21은 이후 150여 회 비행시험을 수행하면서 초음속 비행능력과 야간비행 성능을 입증했고 능동형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 탑재해 시험비행에 성공한 데 이어 이날 무장 비행시험에도 착수한 것이다. 앞으로 KF-21은 저고도, 고고도, 저속, 초음속 등 전 비행영역에서 단거리·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기총에 대한 시험을 시행해 무장 안정성과 성능 검증을 이어갈 계획이다. 중장기로는 국산 무장도 개발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체계통합하여 운용할 계획이라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방사청은 "오늘 무장 비행시험 성공으로 미
군사망진상위, 67년만에 진상규명…1956년 병사 군인 214명, 순직 재심사 권고 야외사격장에서 나무를 하던 민간인을 대피시키려다 숨진 군인의 사인이 '변사'에서 약 70년 만에 '순직'으로 변경될 전망이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는 지난 27일 오전 제62차 정기회의에서 사망 49건을 진상을 규명하는 등 진정사건 59건을 종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진상규명 사례 중 A씨의 경우 군 기록에는 야외사격장 목표물 지점에 들어가 작업을 하다 81㎜ 불발탄을 밟아 1956년 숨진 것으로 기재됐다. 당시 군은 A씨 사망을 '변사'로 처리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소속대에서 파견 근무를 나와 대기호에서 사용할 땔감을 마련해 복귀하던 중 81mm 박격포 야외사격장에 민간인 4~5명이 나무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안전을 위해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자 혼자 걸어가던 중 불발탄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군사망진상위는 A씨의 사인을 '순직'으로 변경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또 가혹행위 끝에 극단선택으로 숨진 B씨에 대한 진실도 드러났다. 군은 B씨가 평소 완전군장 구보에서 자주 낙오해 고민하던 중에 부대전투력(ATT) 측정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1984년 자해로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B씨는 평소 선임으로부터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고, 숨진 날에도 선임병으로부터 곡괭이 자루로 심하게 구타당하는 등 일상적 병영비리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헌병대는 부대 요인에 대해 수사는 하지 않고 일부 지휘관의 진술만을 근거로 B씨의 사인을 개인의 부대 부적응으로 결론을 내고 진상을 은폐한 것으로 파악됐다. 위원회는 이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