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는 애도기간, 시작되는 '이태원 정국'…양당 전략은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야권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정조사에 이어 특별검사까지 제안하며 여권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한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개정 등을 꺼내며 ‘야당 책임론’으로 맞서고 있다. 다만 경찰의 이태원 참사 수사가 ‘셀프 수사’란 한계에 놓인 만큼 향후 수사 결과와 여론 흐름에 따라 여권 대응은 달라질 전망이다.

국정조사 이어 특검 꺼내든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일부터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한 국정조사 추진을 줄곧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에 (이태원 참사) 관련 자료를 빠짐없이 신속하게 제공하고 공개하는 게 이 문제를 풀어가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며 “여야가 다 동의하는 국정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 파면까지 요구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이 장관과 윤 청장을 즉각 파면하고, 외신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 농담하고 시시덕거린 한 총리도 즉각 파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를 차례로 만나 여야 공동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이 원내대표는 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진상을 의혹 없이 밝혀달라는 시민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게 국회의 사명이자 의무, 책임”이라며 “정의당은 성역 없는 국정조사를 추진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대여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1일 '112신고 녹취록' 공개로 경찰의 부실 대응이 드러난 만큼 이번 참사에 정부 책임이 크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국정 조사에 이어 특검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민주당이 향후 정국을 이태원 참사로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끝나는 애도기간, 시작되는 '이태원 정국'…양당 전략은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국민의힘은 야권의 국정조사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야권이 꺼낸 국정조사 요구가 ‘정치 공세’라는 판단에서다. 주 원내대표는 “지금은 국정조사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신속한 강제수사로 증거를 확보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으니 수사 결과를 우선 지켜보자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강제 수단이 없는 국정조사로 시간을 끌고 (경찰) 수사와 중첩하는 것은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속내 복잡한 여당... 야권 책임론 꺼내

야권 공세에 강경하게 맞서고 있지만, 여권 분위기는 복잡한 상황이다. 겉으로는 경찰 수사를 지켜보겠다고 해도 결국 경찰의 ‘셀프 수사’라는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일 대령통실 관계자가 경찰 수사와 관련해 “(수사에) 국민적 의혹이 남는다면 다양한 다른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여권은 우선 ‘검수완박’ 개정을 꺼내들며 역공에 나서고 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경찰) '셀프수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런 셀프수사가 문제라면 원상복구 시키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참사 사건을 경찰이 '셀프 수사'하게 된 것은 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 법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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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의경 폐지 등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꺼낼 가능성도 나온다. 정미경 전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나와 “세월호 이후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뭐라고 하셨나. 안전 최고로 치겠다고 하지 않았나"며 "소방 경찰 등 시스템 정비 왜 안하셨나. 이런 사고가 났다는 거 자체는 문재인 정권이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설특검 가능성은?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국정조사 요구에 맞서 상설특검 카드를 꺼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경찰의 셀프 수사라는 우려를 불식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검수완박 법 통과로 대형 참사 사건은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이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는 경찰에 대해 직무유기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에 나설 수도 없다. 형사소송법상 동일 범죄에 대해 경찰이 영장을 먼저 신청한 사건은 경찰이 계속 수사를 맡게 돼 있어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수사 대상이 경찰의 경우 경무관 이상 간부여서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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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가 본회의에서 의결하거나 법무부 장관이 공정성 등을 이유로 특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특검을 발동할 수 있다. 여야 합의와 관계 없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결정으로 특검을 발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특검 발동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큰 만큼 발동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게 정치권 분석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특검 수사가 시작되면 경찰을 넘어 행안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며 “특검까지 발동해 여권에 부정적인 이슈를 길게 끌고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지지도·수사 결과가 관건

여권은 여론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른 국민 반응과 여권 지지도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 초선 의원은 “경찰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진상 조상에 나섰지만 수사 결과가 부실하면 ‘제식구 감싸기’나 ‘꼬리 자르기’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여론 추이, 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어떤 쇄신책이 나올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인적 쇄신을 통해 하루빨리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이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윤희근 경찰청장 경질과 이 장관 자진 사퇴를 주장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야당과 국민들의 비난 대상이 된 인사들은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