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정원장(오른쪽 첫 번째)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북한 어민 북송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 전 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병언 기자
박지원 전 국정원장(오른쪽 첫 번째)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북한 어민 북송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 전 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병언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 문재인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27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자료 삭제 지시는 없었다”고 한목소리로 부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일정을 바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자료 삭제 지시 없었다”

서 전 실장 등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안보 문제를 ‘북풍 사건화’하면서 전 정부에 대한 정치 보복에 매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회견에 앞서 5700자가 넘는 입장문을 통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북한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한 해명을 내놨다. 입장문은 노 전 실장과 박 전 원장, 서 전 실장,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정의용 전 안보실장 등 다섯 명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핵심 라인인 이들은 “현 정부가 월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다른 실종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판단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월북으로 몰아갈 이유도 실익도 전혀 없었다”며 “월북한 민간인까지 사살한 행위는 북한의 잔혹성과 비합리성만 부각할 뿐이다. 이것이 북한의 입지나 남북 관계에 과연 어떤 이익이 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당시 첩보 내용을 삭제하는 등 사건을 은폐했다는 감사원 주장에도 “진실 왜곡”이라며 적극 반박했다. 이들은 “첩보의 정보화 과정에 관여하는 인원만 해도 다수인 상황에서 은폐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며 “민감 정보가 불필요한 단위까지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배포선 조정을 두고 삭제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실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실장은 ‘탈북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해서도 “당시 정부는 우리 국민의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이들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책임 있는 당국자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이런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동해 흉악범 추방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고민정 최고위원과 설훈·홍영표·윤건영 의원 등 친문계 핵심 인사들도 회견장을 찾았다. 전 정부 사건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이 대표는 이날 별도의 발언은 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비이재명계 의원은 “전 정부 인사와 본인 측근까지 모두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니 ‘대여 공세’를 위해 힘을 합치자는 의미에서 스크럼을 제안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與 “이재명 방탄 위해 당 동원”

국민의힘은 이날 기자회견을 두고 “가해자들의 방탄 기자회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고(故) 이대준 씨에 대한 명예살인을 또다시 확인 사살한 것이며 유족에게는 2차 가해를 넘어 3차, 4차 가해한 잔인한 시간이었다”고 논평했다. 또 “이 대표가 본인의 방탄을 위해 민주당 전체를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TF 위원장을 맡았던 하태경 의원은 라디오에서 ‘첩보 삭제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박 전 원장 주장에 대해 “군대적 상명하복 조직인 국정원에서 원장의 지시 없이 삭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 의원은 서 전 실장에 관해서도 “문 전 대통령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본인이 좀 더 강력하게 거짓말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설지연/전범진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