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두 달 전인 지난 8월17일 K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최경영 KBS 기자가 통일·외교안보 현안 관련해 출연한 권영세 통일부 장관에게 느닷없이 국민의힘 당권 얘기를 꺼냈다. 차기 전당대회가 연말이 아닌 내년 초에 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1기 내각 개각과 함께 권 장관이 당권에 나설 것이란 ‘권영세 차출설'이 수면 아래서 꿈틀대던 시점이었다.

▶관련 기사 본지 8월13일자 <與 전대시기 '갑론을박'…권영세·원희룡 등판설도>

당시 권 장관은 ‘차기 국민의힘 당대표로 적임자라는 평가가 있다’는 진행자 발언에 “코멘트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곧이어 진행자가 “정치적인 질문이라서 꺼리는 것 같다”고 말하자 권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꺼린다기보다 제가 할 수 없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정치인인데 생각이야 왜 없겠습니까. 구체적인 사안마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생각이 있는데 언제 또 편하게…
당시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2024년 총선 공천권이 있는 당대표인데 왜 욕심이 없겠나. (출마)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내년 초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에서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새 당대표 유력 주자로 권 장관이 주목받고 있다.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통일부 장관을 맡아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해 누구보다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잘 읽는 데다 수도권 4선 중진으로서 수도권·중도층 확장성을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당협위원장 교체 등으로 전대가 내년 3월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장관 부분 개각과 맞물려 '권영세 출마설’은 더 힘을 받는 모양새다.

권영세는 누구?

1959년생인 권 장관은 서울을 정치적 기반으로 둔 4선 중진 의원이다. 16~18대 국회 때는 영등포구를 뒀고, 21대 국회 들어서는 용산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보수 텃밭인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가 아닌 서울에서 4선 이상을 한 의원은 21대 국회 기준 권 장관과 박진 외교부 장관 두 사람 뿐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주중대사를 지내 친박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비교적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선대본부장·장관 이어 당대표까지…'권영세 차출론' 가능성은?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그랬던 권 장관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정권 실세 중 한명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7월 당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아 윤 대통령 입당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게 권 장관이다. 이후 캠프에선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하며 대선을 지휘했다. 이어 인수위 부위원장을 거쳐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서 초대 통일부 장관을 맡게 됐다.

권 장관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2년 선배다. 재학 시절 형사법학회 활동을 함께 하며 윤 대통령과 알고 지냈다. 사법연수원 기수(15기)가 윤 대통령(23기)보다 여덟 기수 높아 윤 대통령의 검찰 선배이기도 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고, 캠프나 인수위에서 주요 직책을 맡길 정도로 권 장관에 대한 신망이 두텁다”고 말했다.

윤심 업고 당권 도전 나서나

내각에 몸 담고 있는 권 장관이 최근 당에서까지 주목을 받게 된 건 차기 전당대회 때문이다. 지난 7월 이준석 전 대표의 당 윤리위원회 징계로 지도부가 무너진 뒤 차기 전대 시점으로 내년 초가 거론되면서다. 1기 내각 개각과 함께 권 장관이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당안팎에서 나왔다.
선대본부장·장관 이어 당대표까지…'권영세 차출론' 가능성은?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당시 한 중진의원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당 혼란을 수습하고 싶을텐데 대통령실이 내년 초 전대를 생각하고 있다면 권 장관이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중 한 명이 당권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정치권에선 차기 당대표가 '윤심'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시각이 짙다. 차기 당 대표는 당을 추스르고 국정을 뒷받침해야 하는 만큼 대통령실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새 당대표가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되는 정치적 상황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갖는 차기 당 대표는 윤심을 잘 읽고, 물밑 조율을 거쳐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경선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다. 차기 총선에서 여권이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는 5년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게 된다. 서울 지역구로 둔 권 장관이 차기 당 대표의 조건으로 꼽히는 배경이다.

한 중진의원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기(당대표) 욕심대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상황, 특히 대선주자인 인물이 당대표가 돼 공천권 행사로 차기 대권을 위한 기반을 쌓으려는 상황을 제일 피하고 싶을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권 장관은 (공천) 욕심 부릴 사람이 아니다”고 전했다.

남은 변수는?

당대표 출마를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권 장관의 지지도는 아직 부족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넥스트위크리서치가 KBC광주방송과 UPI뉴스 의뢰로 지난 20일부터 21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를 물은 결과, 권 장관은 1.9%로 집계됐다. 유승민 전 의원(23.5%), 이준석 전 대표(18.9%) 등 비윤계 인사를 비롯해 안철수 의원(11.1%), 김기현 의원(4.7%), 정진석 비대위원장(2.8%) 보다 낮다.
선대본부장·장관 이어 당대표까지…'권영세 차출론' 가능성은?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다만 윤심이 권 장관으로 기울일 경우 권 장관의 당대표 당선은 어렵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여론조사 지지도 보다 당원 표심이 더 큰 영향을 미쳐서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은 당원 70%, 일반 여론조사 30%를 반영해 당대표를 뽑았다. 당 고위 관계자는 “최근 비대위가 당협 교체를 예고했는데 새로 뽑힐 당협위원장에 친윤계 인사가 대거 인선되면, 당원 표가 윤심이 꼽은 후보로 쏠리지 않겠느냐”며 “당원 표심만으로 부족한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에선 권 장관이 장관직까지 내려놓고 당권에 뛰어들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친윤계 당권 주자로 나섰는데 선거에서 패할 경우 대통령은 물론 친윤계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 우려도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초선의원은 “지난달 원내대표 경선에서 주호영 원내대표(62표)에 맞서 비윤계인 이용호 의원이 42표나 얻은 만큼 당내 친윤계를 향한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윤상현 의원, 권성동 의원 등 또다른 친윤계 인사가 당권에 나설 경우 표가 분산될 변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