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여성가족부.  /사진=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여성가족부.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가 폐지된다. 정부는 지난 6일 여가부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이관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확정했다. 여성가족부란 명칭에서 ‘여성’이 ‘양성평등’으로 바뀌고 ‘인구’가 추가됐다.

여가부 존폐 논란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당사에서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비판하면서 정치권으로 불려 나왔다. 이미 지난 21년간 명칭이나 조직의 성격을 둘러싼 부침이 반복되면서 ‘시한부 부처’라는 오명이 꼬리표처럼 뒤따랐었다.

여성부 만든 DJ "여성부 없어지는 날까지…"

여성가족부의 시작은 김대중 정부 때 출범한 여성부였다. 2000년 1월 3일 새천년 신년사에서 여성부 설립 의지를 밝힌 김 전 대통령은 그해 2월 21일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여성부 신설은 역사의 흐름이며,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업주부들의 가정에 대한 공헌도도 국내 총생산(GDP)에 넣고 재산 문제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특별위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의 여성 관련 업무를 넘겨받아 2001년 1월 29일 부처로 승격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여가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기였던 2005년 탄생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유아 보육에 관한 업무를 이관받으면서 가족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로 재편했다.
김대중(왼쪽) 전 대통령이 2001년 1월 29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초대 여성부 장관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대중(왼쪽) 전 대통령이 2001년 1월 29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초대 여성부 장관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가부 폐지를 처음 거론한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여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부서”라며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당시 임기를 한달여 앞둔 노 전 대통령은 이 문제로 이 전 대통령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28일 당시 인수위의 정부 조직개편에 반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부가 왜 생겼고 그것이 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됐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봤나. 여성부에선 귀한 자식 대접을 받던 업무가 복지부로 가면 서자 취급받지 않겠느냐”며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다.

결국 민주당과 여성계 반발로 여가부는 가족·청소년 업무를 복지부로 다시 돌려보내고 여성 업무만 전담하는 ‘초미니 부서’로 존치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2년 뒤 입장을 바꿨다. 2009년 11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창립 50주년 기념식 “이제는 여성정책의 외연을 아주 확대해서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데도 기여해야 할 것”이라며 “가족과 청소년 등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은 여성부에 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선인 시절부터 고수했던 방침을 철회하고 여성부를 다시 여성가족부로 복원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선 ‘양성평등’이 화두였다. 2015년 7월 여성발전기본법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되는 것을 계기로 여가부의 부처명을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는 안을 추진했었다. 앞서 국무총리 주재 여성정책조정회의도 양성평등위원회로, 여성정책책임관도 양성평등정책책임관으로 매년 7월 첫째 주로 지정된 여성주간도 양성평등주간으로 이름을 바꿨다.

14년前 노무현-이명박 갈등 '데자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하루 전날인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정영애 여가부 장관으로부터 ‘여가부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보고받은 자리에서 “여성가족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든 여가부가 관장하는 업무 하나하나는 매우 중요하고 더욱 발전해 가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겨냥한 것으로, 국민의힘이 여가부 폐지를 공론화한 이후 처음 견해를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 때 여성부로 출발해 노무현 정부에서 확대된 여가부의 연혁을 언급, “젠더 갈등이 증폭되면서 여가부에 대한 오해도 커졌지만, 결코 여성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다”며 한부모 가족 지원, 아이 돌봄 서비스 등 가족·청소년 정책과 예산 규모를 상세히 설명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보름 전 JTBC가 방송한 손석희 전 앵커와의 대담에서도 “여가부 폐지에 대한 당선인 측이 (대선) 초기에는 좀 막무가내였다”며 “정부 조직이 필요한 이유가 있는데 잘 알지 못한 채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면 ‘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반대를) 하는 게 (현직 대통령의) 의무”라고 말했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