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수수료 절감을 목적으로 도입된 간편결제 시스템인 제로페이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소비자의 외면이 여전한 가운데 주요 수익원인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관련 예산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다. 시장성을 무시한 정부 주도 시스템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이 3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제로페이 누적 결제 금액은 4조4916억원이다. 이 중 87.3%가 온누리상품권 지역사랑상품권 등 각종 상품권을 통한 결제 실적이다. 제도 취지에 맞는 일반 직불 결제 실적은 12.7%로, 이 가운데 4.3%는 법인카드 직불 결제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행액의 10%를 보조하는 상품권 매출을 덜어낸 결제 실적은 5700억원가량에 그치는 것이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카드결제 수수료 부담을 줄이겠다며 도입한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1호 공약’으로 추진했고 2019년 중기부가 지원하면서 전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 구축을 위해 중기부와 서울시는 결제 시스템 보급 및 홍보에 581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각종 간편결제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는 가운데 제로페이를 이용하는 소비자 수는 기대에 못 미쳤다. 정부 홍보 등을 통해 제로페이 가맹점은 152만 곳까지 늘었지만 63.1%인 96만4363곳은 제로페이 결제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사용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제로페이는 지역상품권 구입 수단으로 전락했다. 제로페이를 이용한 온누리상품권 지역사랑상품권 구매는 △2019년 187억원 △2020년 1조889억원 △2021년 2조6843억원 등으로 급증했다. 지역상품권은 병원과 학원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제로페이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

이런 가운데 수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서울사랑상품권의 판매대행사가 제로페이에서 서울페이플러스로 변경되면서 운영수익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제로페이를 운영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의 수익은 2020년 78억원에 이르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1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사업이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간편결제진흥원은 민간 결제사에 운영비용 분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SSG페이 스마일페이 엘페이 등은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고 제로페이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제로페이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관련 수익도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2023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해 1조522억원에서 올해 6050억원으로 줄어든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내년에는 ‘0’이 되는 것이다. 한 의원은 “제로페이가 기생하던 지역사랑상품권이 사라지면서 제로페이는 갈 길을 잃은 상태”라며 “아무도 혜택을 보지 못하는 제로페이의 역할과 과제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