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등 민간이 재원조성·사과 거론했을듯…日, 경청하면서 "일관된 입장" 반복
해법 온도차 속 정상회담도 막판 신경전…정부, 여론수렴 대토론회 검토
박진, 피해자 목소리 日에 전달…강제징용 해법 논의 진전될까
한국과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해 접점을 찾으려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 진전이 보이지는 않는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유엔 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에서 19일(현지시간) 오후 약 55분간 회담을 했다.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 양자회담으로선 비교적 장시간이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박진 장관은 자신이 직접 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소개하고 그동안, 네 차례 민관협의회에서 나온 의견을 하야시 외무상에게 전달하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했다.

박 장관은 그간 국내에서 제기된 다양한 해법들과 피해자 요구 등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에 전달한 피해자 요구에는 일본 기업의 사과 및 배상 판결 이행을 위한 재원 참여가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지난 2일 광주에서 박 장관을 만났을 때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손편지를 전한 바 있다.

또 일본 강제징용 피고 기업의 직접 배상 대신 대위변제(제3자에 의한 변제) 등 방식이 동원되더라도 이를 위한 재원 조성에는 피고 기업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피해자 측 주장이다.

피고 기업의 책임 구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이다.

재원은 한일 기업 등 민간 위주로 조성해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민관협의회는 재원 조성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데 부정적으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의 구체적인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지하게 경청하고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을 했다는 것이 외교부 당국자의 전언이다.

이런 자세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기류가 바뀌는 신호일지도 주목된다.

그간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한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최근에는 이전보다는 진지한 태도로 협의에 임하는 모양새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보이며 한국과 외교적 소통을 가속하고 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최근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쟁점 등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관한 박 장관의 설명에 대해 하야시 외무상은 "일본 측의 일관된 입장을 전했다"고 일본 외무성은 보도자료에서 전했다.

일본 측의 '일관된 입장'은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등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 주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협정에 어긋나며 국제법 위반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인식을 우회적으로 반복해 표명한 셈이다.

박진, 피해자 목소리 日에 전달…강제징용 해법 논의 진전될까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싼 한일 간 막판 신경전도 결국 강제징용 해법을 둘러싼 온도차와 관련이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함구했다.

일본 입장에선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과 정상회담을 여는 데 여전히 신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지지율이 급락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로선 일본 내 보수층 여론을 살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한국 입장에서는 최고위급 담판을 통해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설득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급변하는 국제정세 및 엄중한 한반도 상황"(한국 외교부 보도자료), "현재의 전략환경"(일본 외무성 보도자료) 등을 거론하며 양국이 관계개선 시급성에 인식을 같이하는 것은 논의 진전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대일 설득 노력을 바탕으로 국내 여론을 모으기 위한 노력도 가속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는 강제징용 관련 다양한 주체들이 참석하는 대토론회 개최를 염두에 두고 구체적 규모와 형태, 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 2차 민관협의회에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측 관계자만 참석했지만 대토론회가 열리면 아직 확정판결을 받지 못하고 소송 중인 피해자, 징용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피해자, 여러 지원단체 등 더 폭넓은 당사자들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