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한 가장 큰 이유로 비대위 출범에 따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주 위원장이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하면 당원권 정지 징계가 끝나는 내년 1월 이 전 대표의 복귀가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26일 판결을 내린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주 위원장 임명 과정에도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의 사정을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의 비상상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헌 96조 1항은 ‘당대표 궐위(자리가 빔)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비대위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원내대표인 권성동이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고, 당헌 개정안을 공모하는 등 당대표 직무 수행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며 “일부 최고위원이 사퇴했지만, 전국위원회에서 최고위원을 선출해 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상임전국위원회가 당의 현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보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비상상황이 맞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임전국위는 최고위 기능 상실이나 비상상황의 의미에 대한 정의나 설명 없이 당대표 사고와 최고위원 사퇴가 비상상황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했다”며 “이는 해석이 아닌 적용에 관한 의견에 불과하고 그 전제에 해당하는 해석이 없어 효력에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상임전국위가 당헌 96조 해석뿐 아니라 비대위 설치까지 결정한 결과가 됐는데, 당헌에 비대위 설치의 주체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100인 이내로 구성되는 상임전국위에 비대위 설치 결정 권한이 없음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등의 반발을 의식한 듯 재판부는 정당의 내부 의사 결정이라도 사법적 판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정당의 활동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는 것이고, 정당은 정치적 조직체”라며 “내부에서 형성되는 과두적, 권위주의적 지배경영을 배제해 민주적 내부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규제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황정수 부장판사는 지난 9일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국민의힘을 상대로 낸 당원 임시지위 가처분 신청도 인용한 바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 개입으로 비칠까 우려해 정당 관련 사건에 소극적인 판결을 내리는 다른 판사들과 차별화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