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동의없이 녹음하면 불법
제3자뿐만 아니라 대화 당사자도 상대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법적 증거로도 활용되는 녹취의 순기능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사진)은 지난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타인 간의 사적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다만 이는 대화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의 녹음을 금지한 조항이다. 본인이 대화 참여자라면 상대방 의사를 묻지 않고 녹음해도 불법이 아니다. 이에 통화나 대화 내용이 무분별하게 녹음돼 음성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헌법에 보장된 음성권은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해외에선 미국 13개 주와 프랑스 등이 상대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규제한다. 프랑스는 녹음 파일을 소지만 해도 법적 처벌 대상이다. 윤 의원은 “통신장비 발달로 대화를 녹음해 협박 등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에선 제3자가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어도 공익 등 정당한 목적이 있으면 적법하게 보기도 한다. 2018년 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하던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둬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학부모의 녹음을 불법으로 보지 않았다. 아이에게 학대 방어 능력이 부족해 녹음 없이는 범죄 행위를 밝힐 수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녹취 폭로’로 정치권이 요동친 적도 많다. 지난 1월 대선을 앞두고 김건희 여사가 한 기자와 나눈 ‘7시간 통화’가 공개돼 정국의 변수가 되기도 했다.

녹취 금지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대화 녹취를 통한 법적 증거 확보나 사회 고발이란 순기능이 저해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2017년 통화 중 녹음할 경우 상대에게 알림이 가도록 하는 내용의 법이 발의됐으나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바 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