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내세운 '과학방역' 추구…노동당 중심 국정운영 부각
윤곽 드러난 김정은 방역팀…보건교육과학 당부장이 사령탑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지휘해온 국가비상방역사령관은 노동당에서 보건과 과학 및 교육을 관장하는 리충길 부장으로 확인됐다.

12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리충길 노동당 과학교육부장은 지난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하에 열린 국가비상방역총화 회의에서 '국가비상방역사령관' 직함으로 토론에 참여했다.

리 부장이 지난 4월 말 확산한 코로나19를 수습하기 위한 91일간의 최대비상방역 기간 '방역사령탑' 역할을 맡아 진두지휘한 것이다.

노동당 내 전문부서 20여 개 중 '보건'만 똑 떼어서 다루는 부서는 없고 당 과학교육부에서 보건까지 함께 담당하기 때문에 리충길이 방역사령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보건부문을 범 과학 교육 범위에서 다루고 있는 셈이다.

리 부장 위로 보건 과학 교육을 담당한 박태성 당비서가 있음에도 사실상 실무자격인 당 부장이 총괄 사령관을 맡은 것은 북한이 그만큼 실무적이고 실속있는 대책을 중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리충길이 방역 사령탑이 된 것은 북한이 코로나19 대응에서 나름 '과학 방역'을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리충길은 2015년부터 내각 국가과학기술위원장과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앙위원장을 지낸 과학자이자 이 분야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

백신과 치료제 없이 지역별 봉쇄와 단위별 격폐라는 극단적 조치로 코로나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군을 동원하는 게 더 쉬울 수 있지만, 과학 전문가에게 그 역할을 맡긴 것이다.

리충길은 비상방역총화 회의 토론에서 "과학적인 방역은 과학적인 검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전국적인 검사 밀도와 검사의 정확성, 과학성을 최대로 높이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우겠다"며 여러 차례 과학 방역을 강조했다.

또 "생물공학 기술을 비롯한 첨단 기술에 의거해 치료약물 개발과 생산을 힘있게 밀고 나가며 세계적인 현 보건 위기만이 아니라 전망적인 전염병 위협과 도전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방역 부문의 기술 역량과 물질적 토대, 기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윤곽 드러난 김정은 방역팀…보건교육과학 당부장이 사령탑
이와 함께 북한이 군이 아닌 노동당 전문부서 책임자에 국가비상방역사령관 직책을 준 것은 당을 국정 중심에 두고 시스템에 따른 통치를 강화하는 김정은 시대 특징과 맥을 같이한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통치방식이지만 김정일의 '선군(先軍) 정치'하에서 유명무실해졌던 '당 중심' 국정운영이 김정은 시대 출범과 동시에 부활해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김정은은 당 전원회의나 정치국 회의를 일상화한 대신 헌법에서 아예 선군정치 용어를 빼버리고 국정 중심에 있던 군부를 노동당의 통제 속에 가두는 등 노동당 영도 체제를 확고히 구축했다.

이번 전국비상방역총화 회의에서도 수도 평양의 비상방역사단장은 군인이 아닌 평양시당 책임비서인 김영환이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리영길 국방상은 국방성비상방역사단의 사단장이 아니라 부사단장이어서, 사단장은 국방성이나 군부내 당 책임자가 맡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이 스스로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고 칭할만한 위기 상황이어도 섣불리 변칙적으로 군을 동원하지 않고 노동당 영도 체제라는 국정운영 원칙과 절차에 맞게 시스템을 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