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10일 법원에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결정에 대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지난 9일 비대위 체제가 출범한 지 하루 만이다. 당 안팎의 만류에도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 생명과 당의 진로를 법원 판단에 맡기는 초강수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절차적 하자 여부 관건

정치권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이날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비대위 구성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비대위 전환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건은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에 배정됐다. 심문기일은 오는 17일로 잡혔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가처분 신청을 전자로 접수했다”고 적었다. 법조계에선 이르면 1~2주 안에 가처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전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와 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주호영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등 비대위 전환 절차를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당 지도 체제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면서 이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자동 해임됐다. 이에 이 전 대표는 “가처분 신청 한다. 신당 창당 안 한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미 사퇴를 선언한 최고위원이 최고위 표결에 참여한 것은 절차적 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일 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전환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상임위 소집을 의결했다. 당대표 직무대행 사퇴를 선언한 권성동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에서 사퇴한 배현진·윤영석 의원이 ‘사퇴서가 접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고위에 나와 논란이 됐다. 법조인 출신인 한 의원은 “대표 직무대행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권 원내대표가 직무대행 자격으로 주 의원을 비대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각 시 정치 생명 타격

법조계와 당 내부에선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법조계 출신인 한 의원은 “당헌·당규 해석은 일종의 정치 행위이고 정치권 해석을 뒤집었다가 ‘정치의 사법화’란 비판을 받기 쉬워 사법부가 정당 사건에 관여하는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인 다른 의원은 “지난 5일 상임전국위 개최라는 절차를 거쳐 비상상황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90% 이상 확률로 기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이 전 대표의 대표직 복귀는 물 건너간다.

당 의사결정에 법적으로 대응한 데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당내 입지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표가 이 같은 위험을 안고 가처분 신청까지 낸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막판 협상을 위한 카드라는 시각도 있다. 이 전 대표가 가처분 신청 당일이 아니라 오는 13일 기자회견을 예고한 것도 막판 타협을 염두에 둔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당이 이 전 대표 측에 제시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주 위원장은 지난 9일 “이른 시간 안에 이 대표에게 연락해 만나고 싶다”고 밝힌 만큼 법원 결정 이전에 타협이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당은 더 깊은 내홍에 빠질 전망이다. 이미 출범한 비대위 대신 새로 비대위를 꾸리거나 전당대회를 열어야 할 수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절차적 하자라는 위험성을 알고 비대위 체제를 밀어붙인 만큼 권 원내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