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잘 알면 어느 정부나 잘 해결했겠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묻는 기자들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보름 전 같은 질문에 “지지율은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한 것과 사뭇 온도 차가 있다.

지지율은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의 동력을 좌우하는 민감한 지표다. 통상 40%는 국정 운영을 원활하게 해나갈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크게 휘청일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연연하지 않는다”고 반응했다.

지지율 하락은 민심에 귀 기울이라는 경고다. 새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개혁은 ‘독단과 아집’으로 여겨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과 대화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한경DB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과 대화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한경DB

80→6% … “따가운 채찍질”이라던 김영삼


직선제 첫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29%라는 역대 최저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 첫해인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50%까지 반짝 상승했지만 1990년 민자당 창당 이후엔 2년여 동안 20%를 밑돌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1990년) 5월 주한 일본특파원단 간담회에서 “한국인은 급한 면이 있다. 더울 땐 금방 덥고, 식을 땐 금방 식는다”며 “당내 파벌 다툼이 일어나니까 지지도가 떨어졌지만 조금 있으면 올라갈 것이니 큰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초반 지지율이 80%까지 치솟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3년 차였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 지역 보수층까지 이탈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김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 영남일보 창간 50주년 특별회견에서 “정부·여당에 좀 더 잘하라는 의미에서 따가운 채찍질을 한 것”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임기 말에는 외환위기 직격탄으로 김 전 대통령은 한 자릿수 지지율(6%)로 임기를 마쳐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첫 분기 지지율 71%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1999년 ‘옷 로비 사건’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뒤 12월 대통령 당선 2주년 KBS 특별대담에서 “내 지지도보다 생각하지도 않은 일들로 자꾸 국민들을 걱정시키는 것을 보면 한탄이 절로 나오고, 이것이 무슨 팔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5월 15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지 63일만에 대통령 직에 복귀,직무 수행에 들어갔다. 이날 노 대통령은 관저에서 고건 국무총리와 만찬을 가졌다. 사진=노무현사료관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5월 15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지 63일만에 대통령 직에 복귀,직무 수행에 들어갔다. 이날 노 대통령은 관저에서 고건 국무총리와 만찬을 가졌다. 사진=노무현사료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탄핵정국을 맞으며 ‘조기 레임덕’에 휘말렸지만, 야당의 탄핵안 강행이 되레 반대 여론을 결집하면서 지지율은 다시 60%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반짝 반등’ 이후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20%대 후반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5년 5월 경제인 특별사면을 단행하면서 “지지율이야 떨어질 때도 있고 오를 때도 있는 것 아니냐.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던 노 전 대통령은 2년 뒤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들 평가는 잘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올해는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했다.

MB 위로한 김윤옥 “입덧기간이라 생각”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숫자만 놓고 보면 가장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이 급전직하했고, 5년 평균도 35%대에 그쳤다. 임기 초부터 낮은 지지율에 속앓이하던 이 전 대통령이 안타까웠던 부인 김윤옥 여사는 2008년 9월 청와대 출입기자 오찬 간담회에서 “한 생명이 나오는 데도 10개월이 걸린다. 대통령께도 ‘입덧하는 기간이다 생각하시라’고 했다”는 발언을 전했다. 이후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며 자신감을 되찾은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싱가포르 동포 기업인 간담회에서 “임기 중 인기를 끌고 민심을 얻는데 관심 없다”는 ‘단골 멘트’를 내놓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황교안 총리와 함께 회의장
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한경DB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황교안 총리와 함께 회의장 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한경DB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인수 기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임기 초 내각 인선 과정에서 호된 비판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흔들렸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전 대표 시절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며 “지지율 때문에 이상한 행동을 하고 그런 정치는 안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2015년 1월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자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 등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여론을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때 60%대를 넘으며 고공행진하던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탄핵정국을 맞은 직후 4%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종전 최저치였던 김영삼 정부 5년차 4분기의 6% 지지율을 경신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첫 분기 지지율 81%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았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차기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고조에 달했던 영향이 컸다. 문 전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여 왔지만, 2018년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지지율이 8주 연속 하락하자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임기 말까지 40%가 넘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면서는 “국민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겼다. 문정부의 5년 평균 국정 지지율은 51%였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