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진호 일병, 남동생 DNA 시료채취로 확인…193번째 신원확인
19일 동두천 국민체육센터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개최
'장진호 전사' 국군 유해, 1만5천㎞ 돌아 72년만에 가족 품에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가 미국하와이를 경유해 1만5천㎞ 여정 끝에 7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20년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을 거쳐 국내 봉환된 6·25 전사자 신원이 고(故) 박진호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15일 밝혔다.

박 일병의 유해는 북한지역에서 발굴돼 1990~1994년에 DPAA에 인계된 유해 중에 포함됐다.

국유단과 DPAA가 공동으로 신원 확인을 진행하다 국군 전사자로 추정돼 국내로 봉환됐다.

고인의 유해는 북한과 DPAA 하와이지부를 거쳐 총 1만5천470㎞에 이르는 긴 여정을 거쳐 고향 땅을 밟았다.

그러나 봉환 당시에는 유해의 신원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같은 해 고인의 남동생은 6·25 전사자 유족임을 알게 된 지역 농축협 관계자의 권유로 유전자(DNA) 시료 채취를 신청했다.

국유단은 동두천시 보건소를 통해 채취한 유족의 유전자 시료를 분석해 가족관계 가능성이 있는 유해를 특정했고 추가검사를 거쳐 지난달 형제 관계를 확인했다.

국유단에 따르면 1928년 출생인 고인은 6·25 전쟁이 터지고 두 달 후 1950년 8월 16일에 부산에서 입대했다.

일본 징용 경험으로 일본어와 영어가 가능했던 고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군사교육을 받은 후 미 7사단 31연대에 카투사로 배치됐다.

미 7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부산항을 거쳐 북한 이원항에 상륙하는 원산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함경남도 장진읍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1950.11.27~12.11)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장진호 전사' 국군 유해, 1만5천㎞ 돌아 72년만에 가족 품에
장진호 전투는 1950년 북진하던 미군과 중공군 간 전투로, 당시 미 제1해병사단(미 7사단 31연대 배속)은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돼 큰 타격을 받으면서도 적 포위와 장진호의 혹한을 극복해 성공적인 '돌파작전'으로 평가받는다.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에 남동생 박진우 씨는 "집안을 위해 희생한 형님이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니 억장이 무너지지만, 형님을 찾았다니 감개무량하고 형님을 그리워하셨던 부모님 옆에 하루라도 빨리 함께 고이 안장해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19일 오후 3시 동두천 국민체육센터에서 지역 주민과 자치단체, 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신원확인으로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개시된 이래 6·25 전사자 총 19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국유단은 "이번 신원확인은 6·25 전사자 유가족이 주변의 권유로 지역 보건소를 통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기에 가능했다"며 시료 채취에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친·외가 8촌 이내 가족 중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가까운 보건소, 군부대 및 군 병원, 보훈병원 등을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하다면 국유단에 대표번호 1577-5625('오! 6·25')에 문의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