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에 위치한 한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 중인 스탠드 에어컨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지난 8일 서울에 위치한 한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 중인 스탠드 에어컨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에어컨이 실내 온도를 쾌적한 수준까지 크게 낮출 수 있는 건 냉매 덕분이다. 냉매는 증발하면서 주변 열을 흡수하는 냉각 작용을 통해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과거 에어컨과 냉장고 등의 냉매로 주로 쓰인 물질은 프레온가스(CFC)였다. 그런데 프레온가스는 태양 자외선을 흡수하는 지구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규제 대상에 올랐다. 1987년 세계 각국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여 CFC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했다.

CFC 사용이 금지되면서 새롭게 냉매 대체물질로 떠오른 것이 수소불화탄소(HFC)다. HFC는 CFC 대비 오존층 파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등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CFC 못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HFC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이산화탄소 대비 최대 1만5000배에 달해 ‘슈퍼 온실가스’로도 불린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197개국은 2016년 아프리카 르완다 키갈리에서 제28차 몬트리올 의정서 당사국 회의를 열어 HFC 감축에 합의하는 키갈리 개정서를 채택했다.
자료: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자료: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키갈리 개정서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2019년부터 감축을 시작해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2011~2013년 평균소비량의 85%를 줄이기로 했다. 한국과 중국 등 137개 개발도상국은 2024년부터 감축을 시작해 2045년까지 2020~2022년 평균소비량의 80%를 줄여야 한다.

HFC 감축 시행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입법 논의가 시작됐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오존층 보호를 위한 특정물질 제조규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의원 SNS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의원 SNS
이 의원안은 기존 오존층보호법에 담긴 오존층 파괴 특정물질의 정의를 지구온난화 물질인 HFC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정물질을 제1종과 제2종으로 구분해 CFC 등 기존 오존층 파괴물질은 제1종, HFC는 제2종으로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키갈리 개정서 시행에 따라 특정물질 제조 시 부산물로 생성·배출되는 제2종 물질에 대해서는 파괴를 위한 노력을 하도록 했다.

앞서 미국의 경우 환경보호청이 2020년 12월 ‘미국 혁신 및 제조법(AIM)’ 일환으로 HFC 감축을 위한 규칙을 새로 제정했다. 여기에는 HFC 18종이 규제물질로 등재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앞으로 15년간 HFC 생산과 수입을 85% 감축할 계획이다.
자료: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자료: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이 의원안은 키갈리 개정서의 국내 시행을 위한 후속 입법 절차 차원으로 발의됐다. 김용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입법조사관은 “개정서가 이미 2019년 채택된 만큼 2024년부터 국내 시행을 위해서는 입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며 “국내 시행을 위한 입법 절차를 완료해야 키갈리 개정서의 국회 비준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24년부터 키갈리 개정서를 이행하기 위해선 산업계의 HFC 감축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조사관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계에서 특별히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법안을 발의한 이학영 의원실 관계자도 “산업부가 이미 HFC를 쓰는 업체가 많지 않아 비준에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해왔다”며 “HFC 감축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는 냉매가 들어있는 에어컨 등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수출할 때 현지 기준에 맞춰서 HFC의 대체물질인 수소불화올레핀(HFO)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FO는 HFC나 CFC와 달리 오존층이나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적지만 가격이 비싸 비용부담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