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9620원.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제8차 전원회의를 열어 내년 최저임금을 이 같이 의결했다. 노동계는 1만원 약속이 물거품 됐다고, 경영계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고 반발했다. 3개월을 끌던 협상은 모두의 불만족 속에 끝이 났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도한 임금 인상이 고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 최저임금 심의를 며칠 앞두고 논란의 불씨를 키우기도 했다. 최저임금 협상은 양측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과정인 만큼 매번 녹록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만큼 파행도 거듭됐다. 이 첨예한 문제 앞에 역대 정부도 ‘상생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1988년 첫 최저임금은 462원이었다. 당시 자장면 가격은 760원으로 1시간 반을 일해야 먹을 수 있었다. 사진=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1988년 첫 최저임금은 462원이었다. 당시 자장면 가격은 760원으로 1시간 반을 일해야 먹을 수 있었다. 사진=드라마 '응답하라 1988' 캡쳐
자원도 기술도 없이 출발한 산업화는 오로지 값싼 노동력에 기댔다. 수출 경쟁력을 위해 저임금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경제 발전을 위해 저렴한 임금으로 헌신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지나친 저임금 문제가 사회 전반을 뒤흔들자 박 전 대통령은 1971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저임금은 앞으로 점차 해소돼야 하기에 기업인들이 너무 기대해선 안 될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도 강력한 임금 통제 정책을 썼지만, 산업화 그늘에 가려져 있던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문제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노사분규가 터졌고 1985년 265건이었던 쟁의 건수는 정권 말기인 1987년 3749건으로 14배 이상 급증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86년 8월 하계 기자회견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분배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복지라고 하면 얼핏 서구와 같은 수준의 복지를 성급하게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며 “국민소득이 겨우 2000달러 수준인 우리 경제의 능력으로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는 최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복지를 단시일 내에 실현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제는 195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거를 마련했지만, 당시 우리 경제가 이 제도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보류됐었다. 그러다 전 정부 때인 1986년 최저임금법을 제정,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1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제조업체’에 한해 시행됐다. 첫 최저임금은 약 462원.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은 760원, 시내버스 요금은 140원이었다. 이후 최저임금은 노 정권 말기인 1993년 1005원까지 올라 117%의 상승률을 보였다.

1988년 노태우 때 첫 시급 462원
“짜장면 먹으려면 1시간 반 일해야”

2018년 7월 편의점주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인상이 결정되자 인건비 압박을 견딜 수 없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충남의 한 편의점에 '알바 문의 사절' 문구를 입구에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7월 편의점주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인상이 결정되자 인건비 압박을 견딜 수 없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충남의 한 편의점에 '알바 문의 사절' 문구를 입구에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빗발치자 난색을 보이기도 했다. 1989년 6월 한국일보 창간 35주년 특별회견에서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이 17%라고 하는데 일본·대만·홍콩 등 경쟁국에 비해 아주 높은 수준”이라며 “민주화로 노사 분규가 크게 일고 임금이 엄청나게 올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닥치고 있다”고 했다.

1990년 최저임금제는 10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산업의 기업으로 확대 적용된다. 이 효과로 1991년은 최저임금은 역대 최고 인상률(18.8%)을 기록했다. 김영삼 정부는 출범 초 1005원이던 최저임금을 임기 말 1485원까지 올렸다. 그러나 적정 선을 놓고 노사 간 다툼이 계속되자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2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임금 인상만 노동운동의 목표일 수 없다”며 “근로자는 생산성과 기술 수준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저임금 인상 의지가 높았던 김대중 정부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선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언론을 향해 쓴소리도 남겼는데 1998년 9월 방송의 날 자축연에서 “쓰러지는 기업도 많지만 밤낮 공장을 돌려도 시간이 모자란 기업도 있다. 노사가 대립해서 싸우는 것도 있지만 노사가 협력해 자발적으로 임금 삭감을 해가며 기업을 살리는 곳도 많다”며 “언론이 국민에게 어느 정보를 주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깊이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의 최저임금은 1485원에서 시작해 2275원까지 올랐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2275원에서 5년 뒤 4860원까지 올라 65%의 상승률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도 2004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우려, “올 한해만이라도 생산성 향상을 초과하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소득 격차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했다. 2006년 1월 신년 연설에선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대기업의 60% 정도고 비정규직 임금도 정규직의 6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액셀’ 밟던 文
박근혜 정부보다 덜 올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6월 당시 당 최고위원들과 국회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향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당시 최저임금은 5580원이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6월 당시 당 최고위원들과 국회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향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당시 최저임금은 5580원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친기업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침체 등 대형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연평균 인상률이 역대 정부 통틀어 가장 낮은 5.2%를 기록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연평균 10%대를 유지했었다. 재임 첫해 3770원이었던 임금은 5년 뒤 4860원으로 인상됐다.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겠다며 대선 후보 시절 ‘5년간 40% 인상’을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대통령은 복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통해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발언해 노동계의 기대심리를 높였었다. 취임 첫 해 5210원으로 시작해 2016년 6470원까지 올라 연평균 인상률 7.4%를 기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다 영세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커진 탓에 속도 조절에 나섰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7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상폭이 1.5%에 그치면서 최저임금 제도 시행 후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5년간 연평균 인상률도 7.2%로 직전 박근혜 정부보다 낮았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