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으로 1년 넘게 입원…"묘지 자주 못 가 미안해"
'연평해전 20년' 윤영하 소령 부친, 병상서 "아들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현충원에 찾아갔는데 이젠 그렇게도 못하니 아들한테 미안하네요…"
지난 22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제2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81)씨는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나지막하게 말했다.

윤씨는 작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1년 넘게 병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2주면 회복된다 그랬는데 회복이 안 돼서 지금은 팔다리도 거의 쓰지 못해요.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워요.

"
'연평해전 20년' 윤영하 소령 부친, 병상서 "아들아…"
비록 몸은 불편해도 아들을 잃은 20년 전 6월의 '그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했다.

온 나라가 한일 월드컵 3·4위전 한국 대 터키전을 앞두고 흥분에 휩싸였던 2002년 6월 29일.
충남 천안에서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그는 TV에서 서해에서 교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다가 사망자 명단에 적힌 아들의 이름을 보고는 주저앉았다.

불과 보름 전 방송 인터뷰에서 "월드컵 기간에도 서해 전선은 이상 없이 철통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라고 늠름하게 말했던 아들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연평해전에서는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에 참수리 정장인 윤 소령을 비롯해 장병 6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하지만 선제 공격을 받고도 끝까지 조타키와 방아쇠를 놓지 않은 장병들의 반격으로 북한군도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해전 20년' 윤영하 소령 부친, 병상서 "아들아…"
해군사관학교 18기 출신인 윤씨는 해사 50기인 아들 윤 소령의 32년 선배 장교이기도 하다.

이들 부자는 정확히 32년의 간격을 두고 북한 측과 해상에서 교전을 벌이며 국가를 위해 몸을 내던진 기묘한 공통점도 있다.

윤씨는 해군 제12해상경비사 소속 경비정 정장이던 1970년 6월 29일 인천 영흥도 해역에 몰래 침투해 들어오던 4t급 북한 무장 간첩선을 치열한 교전 끝에 나포했고, 아들 윤 소령은 32년 뒤 같은 날 연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윤씨는 당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고, 윤 소령은 전사 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 받았다.

"장교는 국가로부터 선택된 사람이고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고 갈 재원이다.

항상 국가에 충성하며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쳤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말을 참 잘 듣더니 마지막까지도 제 말을 따르고 떠났네요.

"
해군은 오는 29일 경기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제2연평해전 20주년 기념식을 열고 해상 헌화식을 별도로 열 예정이다.

해상 헌화식에는 윤 소령의 이름을 붙인 해군 유도탄고속함 윤영하함도 참여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