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 보다는 학자적 양심" "큰 어른"…여야 불문 회고
"점심 사준다고 시청 구내식당 데려가…곧고 청렴한분"
노정객들이 회고한 조순…"의원 멱살 봉변에 선비처럼 대처"
"정치인이라기 보다는…고고한 학자이자 자상한 어른"
여야 노정객들은 23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를 이렇게 기억했다.

'꼬마민주당' 시절부터 한나라당까지 고인과 정치 역정을 함께했던 권오을 전 의원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치인을 보좌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 보다는 인품이 고매한 학자와 어리광을 부리는 청년 제자 같은 관계로 기억이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권 전 의원은 고인이 1997년 통합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대변인으로 전국 유세를 함께 했다.

고인은 15대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었다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합당을 결정하면서 자신을 정계로 이끌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했다.

이에 대해 "DJ는 다소 섭섭했겠지만, 고인은 사사로운 인연 보다는 대의를 좇아 선택을 했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권 전 의원은 설명했다.

고인은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을 결정하며 대선 레이스에서 내려왔고,1998년 양당 합당을 통해 새로 출범한 한나라당에서 초대 총재를 맡았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는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총재를 역임했다.

정치사상 최단 시간 내에 여야 양당의 총재를 지내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직을 맡았다.

고인의 한나라당 총재 시절 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서청원 전 의원은 "겉으로는 완고해 보여도 아랫사람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큰 어른 같았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며 "진영논리 보다는 학자적 양심을 기반으로 정치권에 '화합'을 이루고자 굉장히 애를 쓰셨다"라고도 말했다.

노정객들이 회고한 조순…"의원 멱살 봉변에 선비처럼 대처"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재오 전 의원은 "아무리 상대 당에서 기분 나쁘게 해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내는 일이 없었다"며 "학자 출신이다보니까 원칙적인 면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늘 타협과 협상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던 어른"이라고 회고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정치인들은 '신선', '산신령'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황우여 전 경제부총리는 "인자한 미소가 떠나지 않던 분이다.

당시 후배 정치인들은 '신선 같은 분'이라고 불렀다"라며 "항상 분열보다는 유연한 자세로 더 큰 목적을 이뤄나가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배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기억도 함께 더듬었다.

정 전 대표는 "고인은 부총리, 총재보다는 내게 '선생님'으로 더 크게 남아있다"며 "산신령이라는 별명도 서울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워낙 인품이 원만한데다가 정책적으로도 지식이 풍부한 분이다 보니까, 국회 입성 후 여야를 달리해 만나도 사실 마땅히 문제를 지적하기가 어려웠다"며 웃었다.

노정객들이 회고한 조순…"의원 멱살 봉변에 선비처럼 대처"
한나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손학규 전 대표는 고인이 15대 대선 투표 당일에도 당 주요 간부들과 비공개로 회의를 열고 IMF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손 전 대표는 고인에 대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또 철학적인 차원에서 나라의 길을 위하는, 그렇게 큰 어른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고인의 정계 진출 계기가 된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를 회고하며 "DJ가 선거전을 진두지휘하며 전당대회장에서 같이 인사를 하는데, 손을 번쩍 못올릴 정도로 정치적으로 수줍어하셨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또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점심 식사를 사주겠다고 하더라. 으레 좋은 것을 사줄 줄 알고 만나러 갔는데 서울시청 구내식당에 데려갔다"며 "그렇게 청렴하고 곧은 분 어른이었다"고 전했다.

5선의 정우택 의원은 고인이 부총리 시절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정 의원은 "당시 한 의원이 멱살을 잡은 적이 있는데, 그런 봉변을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의연하게 점잖은 선비처럼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이 깊었다"고 말했다.

노정객들이 회고한 조순…"의원 멱살 봉변에 선비처럼 대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