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친윤(친윤석열) 그룹을 주축으로 한 의원 모임인 '민들레'(가칭)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가 계파 갈등 논란에 휩싸였다. ‘순수 공부 모임’이라지만 장제원·이철규 의원 등 친윤계 ‘실세’ 의원들이 대거 참여해 “세력을 불리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정치권 안팎에선 2000년대 말 친이(친이명박)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나 친박(친박근혜)계 모임인 ‘여의포럼’과 같은 ‘계파 모임’의 부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들레’가 불 붙인 ‘계파 논쟁’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부는 6.1 지방선거 후 당내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와 차기 당권을 노리는 정진석 국회부의장의 SNS 설전을 시작으로 9일에는 친윤계 모임 ‘민들레’가 발족을 예고하면서 당내 계파 논쟁에 불이 붙었다.

민들레는 윤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총괄보좌역을 맡은 이철규 의원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를 맡은 이용호 의원 주도로 15일 발족 예정인 공부 모임이다. 두 의원은 모임 취지를 “국정 현안에 대한 정책과 정보를 공유해 윤 정부의 성공을 돕고, 친목과 유대의식을 강화하면서 국가 의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의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형태지만,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핵심인 장제원 의원과 김정재 박수영 배현진 의원 등 친윤계 의원이 대거 참여해 계파 모임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성일종 정책위의장과 1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성일종 정책위의장과 1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에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민들레 모임에 대해 “앞장서서 막겠다”고 나서며 논쟁이 격화됐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 나와 “단순 공부 모임 이상으로 비칠 수 있는 모임은 자제하고 지양해야 한다”며 “자칫 잘못하면 계파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윤 정부 성공에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 원내대표가 친윤 그룹인 민들레를 향해 공개 저격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내부에서도 주도권 경쟁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준석 대표도 1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정청 연계 기능을 담당하는 공조직은 구성돼 있는데, 그것에 해당하지 않는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은 사조직"이라며 민들레를 비판했다.

한 비윤계 의원은 “국무총리실 훈령으로 근거가 규정된 당정협의를 건너뛰고 옥상옥 기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사조직”이라며 “향후 각종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당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누구나 참여 가능한 오픈 플랫폼인데 '당 분열' 딱지를 붙이고 '사조직'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2000년대도 공부 모임 열풍

2000년대 말에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에선 각종 공부 모임과 포럼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계기는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이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선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며 한나라당 내부는 친이와 친박으로 계파가 쪼개졌다.

이후 2008년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각 계파 아래 여러 모임이 꾸려졌다. 18대 총선 3개월 뒤인 2008년 7월 친이계 모임인 ‘함께 미래로(미래로)’가 꾸려졌다. 친이계 최고 실세로 불리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을 중심으로 40여명의 친이 의원들이 참여했다. 이후 참가 의원이 70여명까지 늘며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세 모임으로 불렸다.
유기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한경DB
유기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한경DB
친박계에선 18대 총선 당시 친이계의 ‘공천 학살’에 반발해 탈당한 뒤 친박 무소속 연대로 당선된 의원들이 공부 모임인 ‘여의포럼’을 꾸렸다. 경선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공보지원총괄단장을 맡은 유기준 전 의원과 김무성 이경재 이인기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전 의원과 김선동 이정현 전 의원 등이 참여한 ‘선진사회연구포럼’도 대표직인 친박계 공부 모임이었다.

결국 계파모임으로 전락

이들 모임은 초기엔 ‘공부 모임’을 표방했다. 주기적으로 만나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듣고 토론했다. 그러나 변수는 선거였다. 당내 권력 지형의 향배를 가를 선거를 앞두고는 결국 공부 모임이 계파 싸움의 진지로 쓰였다는 설명이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 연합뉴스
이재오 전 특임장관. 연합뉴스
실제 선거 개입 논란도 있었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2011년 4·27 재보선을 1주일 앞둔 20일 내일로 주최 만찬에 참석해 “당 주류라고 하는 의원들이 그냥 보고만 있어선 안 된다. 오늘 모임은 4·27 선거 승리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다시 짜서 체계적인 지침을 마련하려는 자리”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선 내일로 소속 의원 70여명을 강원, 경기 성남 분당을, 경남 김해을에 보내 선거를 도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 전 장관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 의뢰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내일로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여야 거물급이 참여해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2011년 4·27 재보선에서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에 패배한 뒤 친이계가 당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과 선진사회연구포럼 등은 2011년 말 ‘박근혜 비대위' 출범 뒤 계파 해제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자진 해산하는 길로 갔다.

권 원내대표는 10일 KBS 라디오에서 "과거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도 이런 모임이 있었는데 결국 당의 분열로 이어져서 정권연장 실패로 이어진 예가 많고 당의 몰락으로 가게 된 예가 많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처음에는 공부 모임이란 이름에 맞게 부지런히 연구나 토론하다가 선거만 다가오면 대부분 흐지부지됐다”며 “통상 공부 모임에는 정권 실세들이 참여하니 참여 의원들도 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