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공청회가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공청회가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지원자를 서류 전형에서 탈락시키면 해당 기업은 소송을 당하게 된다. 신체장애가 있는 직원을 고객 응대 업무에서 제외해도 큰 문제가 된다.

국회에서 입법화 논의가 본격화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현실화할 일이다. 차별금지법은 167석으로 국회 절대다수를 점한 더불어민주당이 속도를 내면서 이르면 내년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일부 무효 판결’로 시작된 소송 리스크가 나이를 넘어 성별과 학력, 성적 지향 등 전방위로 확산할 수 있어서다.

15년 만에 첫 법제화 논의

차별금지법은 고용과 교육, 서비스 등의 활동 과정에서 개인의 차이에 따른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차별 금지 대상 항목은 성별과 성적지향, 학력, 출신학교부터 인종, 전과, 병력, 고용 형태, 장애 여부까지 20여 가지에 이른다.
고용시장 시한폭탄 된 '차별금지법'…"묻지마 채용·승진시키란 건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처음 이 법을 발의한 뒤 지난 20대 국회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법안이 나왔지만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2020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시작으로 4명의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기독교계 등의 거센 반발로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5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관련 입법 논의가 15년 만에 시작됐다.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은 차별받지 않아야 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구체화할 법률이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지 않다”며 “차별금지법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해 사회적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고 입법 필요성을 주장했다.

‘제2의 임금피크제 소송’ 불 보듯

경제계는 이 법이 고소·고발 남용 등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부분은 ‘고용상 차별금지’다.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채용과 승진, 급여에서 나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지도록 했다. 지난 26일 임금피크제를 연령 차별로 본 대법원 판결이 나온 터라 기업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 크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제2, 제3의 임금피크 소송이 고용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홍종선 한국경영자총협회 근로기준정책팀장은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고용 분야에서 20가지가 넘는 차별금지 사유가 명시된다”며 “그만큼 소송의 종류와 법적 리스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지는 만큼 합리적 차별로 볼 수 있다”며 법에서 ‘학력’을 삭제해달라는 공식 의견을 법사위에 제출했다.

청소년 교육, 여성 범죄 등과 관련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미성년자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수 있고, 기존의 가정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주장도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바른인권여성연합은 “자신을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여성 화장실과 사우나, 탈의실에 출입할 것”이라며 “여성이 잠재적 범죄에 노출되고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법, 고령자고용촉진법 등과 일부 중복되는 점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 살피며 속도 조절할 듯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당내에서도 의견이 다양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의원총회를 열어 당내 의견을 수렴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있지만 국회 의석 구성상 민주당 의지에 따라 본회의 처리까지 강행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입법 가능성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법사위 소속 의원은 “이번 공청회는 지난해 국민청원 동의 10만 명으로 성사됐지만, 당시 반대 청원 역시 10만 명이 동의했다”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강행으로 큰 타격을 받은 민주당이 또 한 번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