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21일 대통령실 1층 대강당.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나타난 양국 정상이 이날 채택된 공동선언문에 대해 각각 연설을 했다.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대목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공장을 언급한 발언. 바이든 대통령은 “이곳에서 한미 양국의 혁신이 어우러지면서 세계 최첨단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며 “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들이 수십억달러에 이라는 투자를 미국에 집행해준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국가간 공동 합의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국에 투자한 한국기업에 감사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바이든의 비즈니스프렌들리 배워라" [여기는 대통령실]

바이든 대통령은 2박3일 방한 기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감사하는 발언을 했다. 방한 첫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현장을 찾아가선 “삼성의 투자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3000개의 새로운 첨단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며 “삼성이 이미 미국에서 만들고 있는 2만개 일자리에 더 추가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머무는 마지막 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가진 단독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어김없이 나왔다. 정 회장에게 연설 기회를 양보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투자는 미국에 8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투자 결정에 실망하지 않도록 미국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은 백악관 유튜브 홈페이지를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됐다.

이런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는 글로벌 외교와 통상 흐름의 변화를 반영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첫 장소를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으로 정한 것이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미국 유력 언론들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다.

김성환 국가안보실장은 ‘첫 방문지를 누가 선택했냐’는 질문에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서로 필(feel·느낌)이 맞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큰 형님(미국)의 뜻을 따랐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1위 반도체 설계 능력을 보유한 국가(미국)과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역랑을 갖춘 국가와 맺은 ‘반도체 혈맹’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자 한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배터리와 같은 첨단 기술이 과거 군사력이나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처럼 한 나라의 국력을 좌우하는 경쟁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바이든의 비즈니스프렌들리 배워라" [여기는 대통령실]
미국 대통령의 이런 ‘세일즈외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에도 봤던 익숙한 장면이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글로벌 대기업에 상대적으로 적대적인 민주당 출신의 바이든 대통령이 자국 일자리 창출에 더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바이든의 비즈니스프렌들리 배워라" [여기는 대통령실]
최근 들어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행보’를 경계하는 목소리들이 ‘스물스물’ 살아나고 있다. 새 정부 조각 과정에 ‘MB(이명박)계의 부활’을 공격하던 화살이 다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방향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14년 전 MB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기조는 ‘기득권 옹호 세력’이라는 집중 공격에 ‘서민 프렌들리’로 서서히 돌아섰다. 혁신과 성장에 성공한 기업인을 저평가하는 사농공상의 문화도 여전히 남아있다.

쇄국정책으로 눈가 귀를 닫았던 조선 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한을 곱씹어 봐야 한다. 세계 1위 국가의 대통령이 자국 투자 유치를 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새로 출발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런 ‘바이든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DNA’를 기대해본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