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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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이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며 제정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만을 남겨두게 됐다.

간호법은 간호계의 숙원 과제다. 70여년 전 제정된 의료법은 바뀐 시대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의사의 독점적 지위를 강조한 구조라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장에선 의사 수가 부족해 의학적 진단과 처방, 심지어 수술 집도까지 진료를 지원하는 간호사에게 전가되면서 이들이 합법과 불법의 담장 위를 걷고 있다는 것도 오래된 지적이다. 간호사들이 법정근로시간 초과 근무, 휴게시간 미보장, 연차휴가 강제 지정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간호단체에선 면허증을 받아도 의료 현장을 떠나는 간호인력이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조항을 따로 떼어내 업무 범위를 명시하고 처우 개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법안의 폐기를 요구하며 총집결하고 있다.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 직역의 이익 추구를 법이 보장하게 된다는 게 주요 반대 이유다.

이미 현행 의료법 아래에서 간호를 통합적으로 규율하고 있는데 간호법을 별도로 제정한다는 데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들은 법안 통과가 진행될 경우 최후의 카드인 집단 휴진에 나서겠다며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간호법을 반대하는 또 다른 단체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결의대회를 여는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간호법 제정 왜?…"현행 의료법은 의사 중심 체계"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를 규정하는 동시에 임금과 근무환경 등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간호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수십 년 전부터 나왔지만, 국회의 본격적 논의는 지난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3당이 간호법 제정 추진을 약속하면서 시작됐다. 1년 후인 지난해 3월 여야가 간호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간호 업무와 인력 규정은 의료법에서 다루고 있다. 간호법 제정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현행 의료법이 1951년 제정 당시의 의사와 간호사 근무 특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대적 요구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만성질환 중심의 질병 구조로 의료 환경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 및 요양의 통합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기존 의사 중심 의료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호단체에서는 의료법이 의학적 치료 중심, 의료기관과 의사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 점을 지적한다. 의료법의 규율 대상은 의료기관이고 이와 관련 내용을 규정하는 체계지만, 간호업무를 하는 간호인력이 근무하는 장소는 의료기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의료적 치료와 돌봄 영역 구분이 어려운 노인이나 만성질환자가 대표적이다. 의학적 치료로 완치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만성퇴행성질환의 경우 간호 인력을 통한 예방, 치료적 간호, 사후 관리 등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법은 1951년 국민의료법이 제정돼 1962년 의료법으로 명칭을 바꾼 이후 주요 내용과 체계를 60년 가까이 유지하면서 이런 현실을 담지 못하고 있다. 1973년과 2007년 전부개정을 거쳤지만 현대화된 보건의료 체계와는 거리가 멀다다고 지적한다. 간호단체에서는 의료 및 요양과 관련된 통합된 서비스를 위해선 의료인인 간호사와 다른 돌봄 인력 간 협력을 위한 법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밤 근무, 비요양기관 근무 등 각 인력군마다 다른 특성을 고려해 의사(치과의사, 한의사 포함) 및 의료기관에 대한 사항은 의료법으로, 간호인력(간호사,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 조산사 등)에 대한 것은 간호법을 통해, 약사는 약사법, 의료기사(방사선사 등)는 의료기사법 등 따로 떼내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 의사가 부족해 의사업무가 간호사에게 전가되면서 생기는 문제도 간호법을 통해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수술실, 병동 등에서 투약·검사·수술·시술 등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PA(Physician Assistant·의사보조인력) 간호사가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지만, 이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불안하게 서 있다. 간호단체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의사와 간호사 간 협력적인 면허체계를 구축하고, 법적 테두리 안에서 안심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 및 간호 보조인력의 업무 범위, 권한과 한계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 업무를 의료기관에만 적용하고 있어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모자보건법 등 다른 보건의료 및 간호 관계 법령에서는 업무가 모호하다. 법령에 따라 의료인인 간호사의 업무를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가 대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모든 간호 관계 법령과 체계를 정비해 해당 면허와 자격 범위 내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밖에 간호단체에선 간호법으로 간호사 법정 정원 준수를 촉진하는 등 간호 인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임금 처우·근무환경 개선 등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의사들은 왜 반대하나

의사단체 등 간호법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간호 업무범위, 간호 전문인력의 양성·수급 및 근무환경 개선' 등엔 동의하더라도, 왜 꼭 간호법을 제정해야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의료법 및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 현행 법체계 안에서 개정하거나, 정부 정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의료법에 규정된 다른 의료인들은 그대로 두고 간호인력에 대해서만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법에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뿐 아니라 간호사까지 포괄해 '의료인'으로 칭하고 각 직역의 업무 범위를 규정해 왔는데, 70년 이상 유지해 온 이 의료법 체계의 근본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다.

의사단체는 간호법이 간호사만을 위한 법률이라 특정 직종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간호법을 따로 제정해 간호사만을 위한 지원과 혜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점에 의문을 표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헌신은 오로지 간호사만 있는 게 아니라, 14만명 의사와 83만명 간호조무사, 120만명의 요양보호사, 4만명 규모 응급구조사도 있다"며 간호법만 제정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또 현재 의사의 진료보조인력으로 업무를 수행 중인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만의 보조인력으로 만들어 간호조무사의 사회적 지위를 더 악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간호조무사협회 등에서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간호법에 반기를 들고 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은 장기요양기관 등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를 간호사의 보조인력으로 만들고, 간호사 없이는 업무를 할 수 없게 만들어 간호조무사를 죽이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간호법 반대론자들은 '의료와 요양의 통합적 시스템'이란 부분에 대해서도 노인복지법상 돌봄인력인 요양보호사가 간호법에 포함돼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요양보호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노인복지시설에서 시설장의 지휘하에 돌봄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이라는 얘기다.

복지위 통과한 법안은 어떤 내용

지난 17일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김민석(더불어민주당), 서정숙·최연숙(국민의힘) 의원들이 각기 대표발의한 간호법안과 간호·조산사법 제정안 등 3건을 법안소위에서 병합한 수정법안이다.

총 네 번의 소위 회의를 거치며 법안이 조금씩 수정됐다. 가장 큰 쟁점이던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했다. 당초 세 의원이 발의한 원안은 의사 등의 '지도 또는 처방'을 받아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의사단체에서 의사의 면허 범위를 침범하는 간호사의 독자적 진료 행위를 허용한 것이라며 문제 삼았다. 간호사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면 단독개원까지 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의료 체계를 흔들수도 있다는 우려다. 결국 복지위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통과한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에서 정한 간호사 업무 규정을 따르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근로환경 및 처우 개선 관련 주요 내용으로는 △적정 노동시간 확보와 일·가정 양립 지원 등 간호사의 권리 명시 △간호사 등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 금지 △'간호인력지원센터'를 신설하고 고충 해소·상담지원 업무 규정 △'교육전담간호사'의 간호법 명문화 등이 담겼다. 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강화하는 내용들도 포함됐다.

최초 법안에서 논쟁이 붙었던 내용 중 일부는 삭제됐다. 요앙보호사·조산사를 간호법 적용 범위에서 제외했고, 간호법을 우선 적용하는 특별법적 지위도 배제했다. 또 의료기관의 책무 규정, 간호종합계획·간호정책심의위원회, 간호사 등 3년 마다 실태조사, 표준근로지침 의무 규정 등도 삭제했다. 의사단체가 독소조항이라고 반발한 내용을 대거 지우면서 본회의 통과 가능성을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통과 시 총궐기” vs “제정 약속 이행하라”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까지 통과해 법사위 심사·의결 및 국회 본회의 의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2005년 국회에 첫 간호법이 발의된 지 17년 만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와 전체회의를 여야 합의 없이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것에 대해 국민의힘 측에서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의사협회는 국회가 보건의료계와의 논의를 '패싱'한 졸속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법사위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의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2000년 의약분업 당시의 의료 파업이 22년 만에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의사단체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위헌 소송으로 대응할 것이란 예고도 했다.

간호조무사협회도 지난 15일 ‘간호법 제정 결사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간호법은 장기요양기관 등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를 간호사의 보조인력으로 만들고, 간호사 없이는 업무를 할 수 없게 만들어 간호조무사를 죽이는 법”이라고 강조하며 투쟁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 등은 간호법이 약속대로 제정되지 않으면 보건의료노조와 연대 파업하겠다고 맞불을 놓은 상태다.

설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