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소형모듈원전(SMR) 기술 협력은 중국과 러시아에 내준 원전 경쟁의 주도권을 차세대 첨단기술력으로 되찾아오기 위한 ‘전략적 원전 동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기엔 차이가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 원전 건설을 중단한 기간 세계 원전 시장의 주도권은 중·러로 상당 부분 넘어갔다.

반전 카드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SMR이다. 양국은 SMR 협력을 통해 미래 원전 시장에서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원전업계에서는 양국이 원자력고위급위원회를 재가동해 수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2 원전 붐에도 중·러가 시장 장악

원전 기술에 대한 수요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로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석유·천연가스 수출 중단으로 에너지 공급이 불안해지고 가격도 폭등한 결과다. 지난 18일 기준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05.53달러로 1년 전 가격인 66.64달러보다 58% 증가했고, 천연가스 1MMBtu 가격은 같은 기간 3.01달러에서 8.37달러로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전은 적은 양의 원료만 사용해도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안정적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영국이 2050년까지 신규 원전을 10기 건설하겠다고 발표하고, 벨기에 프랑스 등이 기존의 원전 축소·폐쇄 계획을 거둬들이는 등 제2의 ‘원전 붐’도 일고 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은 신규 원전 수주 경쟁에서 부진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27년까지 건설 예정인 50개 원자로 중 중국이 15개, 러시아가 12개를 수주해 각각 세계 1·2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은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러시아는 터키 이란 방글라데시 슬로바키아 등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개, 한국은 6개의 신규 원자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1979년 스리마일섬 사태 이후 32년간 원전을 새로 짓지 않았던 미국은 2011년부터 원전 건설을 재개했지만 이전의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 정부가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을 시행하면서 신규 수주를 따내지 못하고 있다.

SMR로 반전 노린다

SMR은 이 같은 상황을 뒤집을 반전 카드로 꼽힌다. SMR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에 일체화한 소형 원자로를 말한다. 1000㎿급 이상 대형 원전에 비해 발전용수가 적게 들어 내륙 지역에 건설할 수 있다. 출력이 작은 만큼 전력 수요가 부족한 도서 산간 지역에 설치하기도 유리하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원전 건설을 고민했던 국가들도 SMR 건설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민간 영역에서는 이미 한·미 간 SMR 개발 협력이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세계 1위 SMR 기업인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글로벌 SMR 사업 공동 진출 및 시장 확대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SK그룹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운 원전 벤처기업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원전 수출협력 방안 발표할 듯

한·미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원전 기술 지식재산권 분쟁을 해소하고 원전 수출에서도 협력할 계획이다.

한·미는 2015년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원자력 상거래, 고급 연구개발 프로젝트, 비확산에 대한 장기적인 협력 등에 합의했다. 이듬해 협정 개정안에 따라 한·미 원자력고위급위원회(HLBC)가 설치됐으나 2018년 8월 지식재산권 이슈가 불거지면서 가동을 멈췄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에 뛰어든 한전은 수출형 원전인 APR-1400이 100% 국산 설계라고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소유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반박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HLBC도 멈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HLBC를 재가동하는 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 원자력산업이 다시 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인적 협력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